
재외동포 고려인들이 한국을 찾아 안정적으로 정착해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재외동포보다는 '단기간 돈을 벌기 위해 온 외국인' 정도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특히 경북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거주·고용·의료·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
경북의 고려인들이 겪는 주거 문제는 이들이 많이 모여사는 성건동 일대에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곳은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다. 다른 동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월세 때문에 고려인들이 모여들며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난달 경북행복재단이 실시한 경북의 고려인 대상 조사에서는 고려인들이 지출하는 월세는 적게는 32만원에서 많게는 55만원까지다. 조사 대상자 절반에 가까운 고려인들의 월평균 가구소득이 100만~200만원에 불과했다.
자녀를 출산하거나 부모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경우 더 넓은 집을 찾아야 하지만 거주비용 부담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또한 원하는 집을 찾더라도 동남아 외국인에 대한 나쁜 이미지 때문에 이사갈 집을 못찾는 경우도 있다.
전세제도가 있어도 목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아 엄두를 못내고 있다. 이사를 나갈 때도 집주인이 외국인이라는 점을 악용해 집수리 명목으로 보증금을 깎거나 물건이 사라졌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경주에 정착한 고려인 A씨는 "몇 달 전 4년간 살던 집에서 이사를 가기 위해서 집주인에게 말을 했더니 원래 있던 TV가 사라졌다며 물어내라고 해 경찰서에 간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고용
고려인들이 최저시급 대우, 높은 근로강도 등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못해 현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경산의 한 공장에 다니는 B(35) 씨는 "일을 야간에 하면서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하루만 쉬고 있다. 일 끝나고 쉬어야하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한 달에 24일 이상, 야간 일을 하며 받는 월급은 한 달에 250만~300만원 수준이다.
지난 2020~2021년 통계청의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고려인의 임시근로자 비율 45%, 60시간 이상 초과근무 비중 15%로 중국 동포와 비교했을 때 각각 2배 이상 높았다.
불안정한 고용과 한국어 교육 등의 부재로 일자리 선택권이 거의 없어서 평일 야근뿐만 아니라 토요일에 불러도 별다른 불만 없이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적으로 돈을 벌로 온 것이 아닌 장기체류 또는 한국 정착의 가능성을 내비치는 고려인들에 대해서도 맞춤형 고용 지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고려인 출신 이중언어강사들의 중요성은 증대되고 있지만 대우와 지원도 좋은 편은 아니다. 이들은 파트타임 형식으로 고용돼 월급이 많지 않고 고용 안정성도 떨어져 선호도가 낮다.
◆의료
한국에 온 고려인들이 한국 의료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정보를 얻는 방법을 몰라서 아플 때마다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이들이 의료기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되는 것은 찾기 어렵다.
고려인들은 '공공병원 진료' 위주의 사회주의 의료시스템에만 익숙해 어느 병원에 가야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대부분의 고려인이 사용하는 러시아어에 대해서 통역 지원이 없어 찾아가는 병원마다 의사소통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나마 번역기를 사용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진료를 볼 수 있지만, 이것도 안되는 경우 통역사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한 뒤 동행해 진료를 봐야한다.
현재 통역비도 최소 2만원부터 시작하고 상황에 따라 비용이 더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천에 사는 C(45)씨는 "병원 방문 시 통역이 없어서 휴대폰 번역기를 사용했는데 거절 당했다.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에 치료하러 왔을 때는 통역이 무료인데 국내 고려인은 대상이 아니고 유료라고 했다"고 했다.
◆교육
고려인들의 '한국어 교육' 공백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주의 한 초등학교의 경우 병설유치원부터 저학년(1~3학년)까지 학년별로 고려인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
외국어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이기 때문에 수업이 한국어로 진행된다. 러시아어가 가능한 친구들이 과반이 넘다보니 고려인 학생들은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내년부터 반을 늘려 밀집된 고려인 학생들을 반별로 분배하고, 러시아어가 가능한 교사를 채용할 방침"이라면서 "고려인 학생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서 하루빨리 근본적 대책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로 중학교에 진학한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매일 일정 수업시간을 일반 교과 대신 한국어 수업을 들어야하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지식을 습득하지 못해 시험을 치는데 한계를 느끼고 학습을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교육에 열의가 있는 학부모들은 방학 때 '한국어 교육'을 위해 과외를 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학생 1인당 평균 20만원이 넘는 비용에 부담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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