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는 지난해부터 지역의 대표 독립유공자인 왕산 허위 선생, 박희광 선생, 장진홍 선생의 추모식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관심 했던 지역 출신 독립유공자 예우에 만전을 다하고 시민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알리겠다는 방침이다.
민족 고유의 설 명절을 맞이해 구미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자들의 활약상과 일대기를 알아보고자 한다.
구미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중에는 지난 18일 53주기 추모식이 진행된 '박희광 선생'이 있다.
박희광 선생은 지난 1901년 구미 봉곡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만주로 이주했다. 이후에는 김광추, 김병현 선생과 함께 3인조를 결성해 암살특공대로 큰 활약을 했다.
그의 활약상을 살펴보면 지난 1924년 친일고등계 첩자인 반역자 정갑주 일가를 몰살하고, 친일파 최정규 집안을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고급 요정 금정관을 습격해 군자금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됐고, 여순형무소에서 19년의 옥고를 치뤘다.
박희광 선생은 지난 1943년 출옥 후에 고향인 구미로 돌아와서 생활하시던 중 업적이 입증돼 1968년 3월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게 됐고,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970년 1월 22일 7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박희광 선생은 현재 서울 동작구 국립제1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배우자와 합장 안장돼 있다.
구미를 대표하는 독립유공자에는 지난해 10월 순국 114주기를 맞이한 왕산 허위 선생을 빼놓을 수가 없다.
왕산 허위 선생은 구미시 임은동 출생으로, 전국 의병장과 연합한 13도 창의군을 결성했다. 이후 의병총대장으로 1908년 일본의 심장부로 불리는 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해 300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했다.
하지만 작전이 실패하면서 서대문 형무소에 제1호 사형수로 순국했다.
왕산 허위 선생의 구국을 위한 큰 뜻은 가문에도 이어졌다. 왕산 허위 선생의 가문은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과 함께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 3개 명문가로 불린다.
특히 수많은 항일 운동가도 배출하면서, 허위 선생을 비롯해 모두 9명이 독립운동 서훈(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가문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왕산 허위 선생의 구국을 위한 마음, 숭고한 희생을 통한 애국정신이 전해졌다. 왕산 허위 선생의 큰 뜻은 권중설, 이홍응, 연기우 등의 의병활동에도 영향을 주었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박상진 의사의 광복단, 의열단의 무장독립투쟁 등으로 이어졌다.
장진홍 선생도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유공자다. 지난해 7월에는 100명이 모인 가운데 조국과 민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92주기 추모식이 진행됐다.
장진홍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구미의 독립운동가로, 그의 대표적인 의거활동에는 지난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 있다.
장 선생은 1895년 현재 구미시 옥계동에서 출생해 1916년 비밀 독립운동단체 광복단에 가입해 활동을 했다.
이후에는 1927년 폭탄 전문가 호리키리 무사부로에게 제조법을 배워 제작한 폭탄을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배달시켜 은행원, 경찰 등 5명에게 중경상의 피해를 입혔다.
조선은행 폭탄 의거활동으로 수사망이 좁혀지자 일본으로 도피했지만, 결국 1929년 오사카에서 체포됐고 1930년 대구형무소에서 자결 순국했다.
이후 1962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으며, 1995년 6월국가보훈처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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