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금 우리 학교는] "설마, 총장님이신가요?"

학기초 대학 총장의 스킨십, 학생들과 거리감 좁히기 시도
마음을 잇는 진심을 눈맞춤에서 시작… 일회성 이벤트 아냐
학생수 급감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선제 대응이라는 해석도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이 15일 운동화를 신고 캠퍼스를 누비며 신입생들의 대학 생활을 응원하고 있다. 대구보건대 제공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이 15일 운동화를 신고 캠퍼스를 누비며 신입생들의 대학 생활을 응원하고 있다. 대구보건대 제공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주된 역할은 민의 청취와 직보(直報)였다. 여러 관리를 거쳐 걸러진 민의는 민의가 아니었다. 왕명도 여러 관리를 거쳐 하달되면 본래 취지가 흐려지기 마련. 현대 기업에서 팀장-과장-국장-임원을 거치는 옥상옥 구조의 결재를 없애고 팀원인 실무자가 총수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은 건 우연이 아니다. 직보 시스템은 진심의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시도하는 대학 총장들의 스킨십은 그래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스킨십에 장사 없다"는 말은 대학에서 정설에 가깝다. 큰 귀를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온 우주의 기운을 청력에 모은 듯했다. 듣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밥 마시고, 차 마시고, 같이 어울리는 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치 않았다. 얼굴을 자주 보면 정이 든다는 데 이견은 없어 보였다.

한없이 권위를 털어내려는 모습은 일회성 이벤트로 굳어지는 형상이 아니었기에,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목소리를 듣겠다는 심지가 굳었기에 '스킨십에 진심인 총장'이라는 말도 무리가 아니었다.

◆"엄마처럼 학생들과 이야기하면 마음도 열리죠."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은 신입생 대학 적응 강화 프로그램 운영에 진심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다니던 학교와는 완연히 다른 대학 캠퍼스에 환경적, 심리적 변화를 겪는 신입생들의 대학 생활 정착을 스킨십으로 돕는다는 취지다.

지난 15일 학생들 앞에 나타난 남 총장은 운동화를 신고 편안한 바지를 입은 채였다. '엄마가 간다'는 구호에 걸맞게 신입생들의 손을 만지며 일일이 대화를 나눴다. 함께 사진을 찍는 건 덤이었다. 이벤트에 참여한 치위생학과 신입생 최지은 양은 "총장님께서 따뜻한 엄마의 모습으로 등장해 너무 놀랐고 직접 안아주실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고 했다.

2002년부터 대구보건대 총장을 맡아온 그가 학생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이벤트를 벌인 건 10년이 넘었다. 그는 "신입생들 앞에서 보직교수들과 인사를 하는데 줄 서서 인사하고 돌아서면 학생들이 나를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근엄하고 높은 분으로 인식될까 염려돼 이벤트를 만들려 했다. 학생들과 거리감을 좁히려 난타도 하고, 춤도 추고, 패션쇼도 한 것"이라고 했다.

남 총장은 "안아주는 게 대수냐고 하겠지만 마음을 전하는 데 스킨십만큼 더 효과적인 건 없다"며 "눈을 보며 나누는 악수에도 친밀감이 생기고, 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고 했다. 남 총장의 스킨십 예찬론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최근 신입생들에게는 소통에 미숙한 점이 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걸 어색해 한다"며 "그렇다고 이들이 버릇이 없는 부류는 결단코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 나이대의 성향은 같다"고 했다.

학생들과의 스킨십에는 반드시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 중에는 김선순 수성대 총장도 있다. 김 총장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 게 일상이다. 운동화를 신고 동네 마실 나가듯 학내를 휘 둘러본다. 학생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건 아니다. 듣그러운 말도 아끼지 않다 보니 일부 학생들에게서 "아줌마 누구세요"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잔소리 못지않게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은 건 철칙이다. 20대 초반 학생들과 소통하며 눈높이를 맞춰온 그의 오랜 방식이다.

그는 "학생들은 나와 교직원 모두가 가슴으로 품어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엄마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했다. 제아무리 좋은 말도 입에서 귀로 전해질 뿐, 마음을 전하는 마무리는 마음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간식거리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 햄버거 등 간단한 간식거리를 나눠주고, 개교기념일(5월 1일) 전후로 캠퍼스 곳곳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에게 교내 카페 무료 이용권도 나눈다.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이 2023학년도 신입생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직접 포장하고 있는 모습. 대구가톨릭대 제공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이 2023학년도 신입생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직접 포장하고 있는 모습. 대구가톨릭대 제공

◆"학생들 사이에 스며들면 총장인지 잘 몰라요."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지난달 20일 23학번 신입생들에게 나눠줄 선물 2천500여 개를 포장하는 총학생회 간부들과 함께했다. 선물은 먹거리와 학용품 등 일곱 가지 물품이었다. 30분 남짓 성 총장의 손이 선물 포장에 힘쓰는 동안 입과 귀는 학생들을 향했다. 포장 작업에 함께 한 학생들과 자연스레 학내 복지와 수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 총장은 "대학 축제 운영, 학생식당 메뉴, 유명 브랜드 입점 여부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일부는 실현될 수 있도록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스킨십이 잦으니 요즘 학생들과 예전 학생들의 차이가 근본적으로는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격의가 없고, 당돌한 표현에 스스럼없는 건 20대라는 나이대의 유구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X세대로 분류된 20대와 2020년대 MZ세대로 갇혀버린 20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나이대 특유의 특성을 보인다는 걸 스킨십을 통해 깨닫는다.

성 총장은 점심시간에도 심심찮게 학생들 사이에 스며든다. 학생식당 애용자라는 그는 학생들이 총장인지 잘 몰라서 편하게 줄을 서서 밥을 받아오고 학생들 사이에서 함께 먹는다고 했다. 심리학과 교수임에도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 MBTI 검사도 받았다는 그는 "수십 년 전에 해보고 이건 학문적으로 아니다 싶었던 MBTI 검사가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이 되니 직접 해봤다. 눈높이를 맞춰가는 게 내 역할이다. 검사할 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올 테지만 ISFJ였다"고 했다.

학생들 속으로 스며드는 총장 중에는 박순진 대구대 총장도 있다. 박 총장은 같이 뛸 수 없을 때는 응원단으로 나선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첫 관문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21일 대구대 경산캠퍼스 서문운동장 잔디 교체를 기념해 열린 총학생회와 교직원 축구 경기에도 그는 선수가 아닌 응원단으로 한자리에 앉았다.

21일 대구대 경산캠퍼스 서문운동장 잔디 교체를 기념해 열린 총학생회와 교직원 축구 경기에서 박순진 대구대 총장이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에서 네 번째가 박 총장. 대구대 제공
21일 대구대 경산캠퍼스 서문운동장 잔디 교체를 기념해 열린 총학생회와 교직원 축구 경기에서 박순진 대구대 총장이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에서 네 번째가 박 총장. 대구대 제공

◆"간식 나누면서 이야기해요."

먹는 데는 장사 없다는 말의 충실한 실현자다. 나눠 먹는 데서 정이 난다는 신념이다. 정현태 경일대 총장은 학기 때마다 '총장이 쏜다' 행사를 연다. 시험기간 학생들에게 총장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하는 행사다. 학생들에게 밥을 나눠주면 팔이 뻐근한 게 며칠을 가지만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때다. 올해는 특히 개교 60주년을 맞아 점심 식사 무료제공 이벤트도 준비한다고 한다.

정현태 총장은 "비대면 강의가 종료된 뒤부터 학생과 교수의 스킨십을 위해 전담 지도교수 상담과 학생 행사에 집중하고 있다"며 "특히 MT 지원비를 특별 편성하는 등 학생과 교수의 라포르 형성을 위한 행사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영남이공대 총장 역시 스킨십에 둘째가라면 서럽다. '총장 미팅 위크(meeting week)'라는 이름의 재학생 만족도 향상을 위한 행사가 있을 정도다. 매년 재학생들의 만족도 향상을 위해 재학생과 총장이 만나 교육, 시설, 복지, 대학 생활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는 행사를 연다. 다음 달에는 신입생 오찬간담회도 예정돼 있다. 대학 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묻고 답하기 식으로 진행하지만 실은 현실적 요구사항을 직접 듣겠다는 것이다.

박승호 계명문화대 총장도 주로 먹으면서 소통한다. 2017년부터 이어오는 '도시락톡톡'은 학생과 총장의 소통 노력을 상징하는 행사가 됐다. 면학분위기 조성과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매학기 시험기간 도서관에서 '간식 나눔 이벤트'도 이어가고 있다. '총장이 쏜다!! 공부하느라 힘들제 힘내'라는 슬로건 아래 선착순 300명이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이재용 영남이공대 총장이
이재용 영남이공대 총장이 '안지랑곱창골목과 함께하는 상생축제'에서 학생들과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영남이공대 제공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