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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단골집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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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박경혜 수필가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수업 후 자주 점심을 먹던 식당이 있다. 음식이 대체로 맛있어서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업 중인 곳이다. 밑반찬은 또 어떤가. 따로 판매도 하는데 깔끔하고 정갈한 서너 가지 찬이 입맛을 돋운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우리 일행을 알아보는 아주머니의 친절도 음식에 맛을 더한다. 식사를 마치면 상을 말끔히 치우고는 아메리카노나 식혜를 후식으로 내놓는다. 본래 손님들에게는 자판기 커피만 제공되지만, 본인이 마시려고 준비해 둔 커피를 특별히 내어주는 것이다. 식혜는 음료로 파는 것인데 수업 뒷이야기가 길어지는 우리를 위해 한턱 쓰시곤 한다.

초겨울 쌀쌀해진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후루룩 소리마저 정답게 들리는 가운데 국물 맛의 비결에 대한 주부들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런저런 갑론을박 끝에 한 사람이 '대기업의 맛'이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놓았다. 대부분의 식당이 며느리도 모른다는 맛의 비결을 그렇게 낸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고 보면 일리 있는 말이라며 한바탕 웃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손님이 대부분 빠져나가 식당 안은 한산했다. 한데 그날은 후식이 없었다. 꼭 나와야 할 음식이 아니기에 별생각 없이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카드를 받아들며 주인아주머니가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조미료 일절 사용 안 해요. 전부 육수로 맛을 내요." 순간 당황한 일행은 서로 눈을 맞추며 어색한 미소로 얼버무리고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것도 같다.

대기업 운운한 분이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이라고 반성했다. 그렇지 않다고, 주인 아주머니 귀가 유난히 밝은 모양이라고 누군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우리는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께 미안한 마음 한 자락씩을 꾹꾹 눌러 담았다. 내가 내지 못하는 맛의 비결에 대한 의심만은 끝내 놓지 못한 채로.

그 후가 문제였다. 매번 수업을 마치고 점심 먹으러 갈 식당을 물색하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소란하거나 장소가 협소하거나 음식 맛이 입에 맞지 않거나 이유가 많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그러면서도 미안하고 서먹해져서 우리가 단골집에 가기를 주저하게 된 것이다. 아주머니의 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선뜻 가지 못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식당을 찾는 수고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렇게 단골집을 잃었다. 한 번 깨진 신뢰는 다시 이어붙이기 어려운 법이다. 그냥 맛있다고, 국물 내는 비법이 뭐냐고 물어봤으면 좋았을 것을. 진정성 있게 질문을 했다면 비법은 알아내지 못했어도 신뢰는 잃지 않았을 터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환한 미소가, 감칠맛 나는 나물무침이 유독 그리운, 허기가 심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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