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한 《일본서기》 정복기사들
《일본서기》는 신공 9년(209)에 야마토왜가 신라·고구려·백제의 삼한이 왜에 항복하고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고 나온다. 이에 따라 신공 47년(247)에 백제와 신라가 왜에 조공품을 바쳤는데, 백제의 조공품은 훌륭한데, 신라의 조공품의 품질이 떨어졌다. 황제국인 왜에서 그 사유를 조사해보니 백제에서 신라의 조공품을 빼앗아 백제의 것이라고 속여서 바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신공 왕후가 화가 나서 재위 49년(249) 장수들을 보내 신라를 공격해서 '비자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를 점령했다는 것이다. 신공 49년은 서기 249년인데 일본과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은 여기에 120년을 끌어올려 369년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른바 '임나 7국'인데 공격당한 곳은 신라인데 망한 곳은 가야라는 황당한 내용이다.
일제 패전 후에는 일본인 학자들도 신공 9년의 삼한정벌설까지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힘드니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폐기했다. 그러나 신공 47년의 조공품 강탈사건이나 49년의 7국 정벌사건은 사실이라고 계속 유지하고 있다. 같은 《일본서기》의 같은 〈신공기〉인데도 어느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거는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뿐이다.
◆임나7국의 위치는 한반도 내?

이른바 '임나 7국'의 위치를 일본과 한국의 역사사학자들은 모두 경상도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들이 임나 7국을 낙동강 중류 이남으로 비정하는 논리를 보면 한마디로 기가 차다. 한국 역사학자들이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는 조선총독부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임나흥망사》에서 탁순을 대구로, 탁국을 경산으로, 다라를 합천으로 비정했다. 그 논리들을 살펴보자.
◆《일본서기》의 탁순이 대구라는 논리

먼저 탁순을 대구로 비정한 논리를 살펴보자.
"탁순(卓淳)은 첫째 탁순(㖨淳)에서 만들었다(일본서기 흠명천황기).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일본군의 집결지이자 아래 기술하는 것처럼 백제에서 처음으로 일본에 건너간 사신의 도래지라는 점으로 볼 때, 앞서 말한 달구화(達句火)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대구이다(스에마쓰 야스카즈, 《임나흥망사》)"
스에마쓰는 임나 7국 중의 탁순을 대구로 비정했다. 그 논리는 ①일본군의 집결지라는 것, ②백제에서 처음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사신의 도래지라는 것, ③대구의 옛 지명이 달구화라는 것이었다. ①번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야마토왜군이 대구에 모여서 신라를 공격했다고 말한다.
이 경우 왜군은 공수부대여야 한다. 그래야 왜군이 경북 대구에서 아래의 경남의 창녕, 김해 등을 공격할 수 있지 않겠나? ②번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서기》에는 백제 사신이 탁순에 와서 왜에 조공을 바치고 싶다면서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탁순국도 길을 몰라서 가르쳐 주지 못했다고 한다.
해양제국인 백제가 일본열도에 가는 길을 몰라서 내륙 대구까지 와서 길을 물어봤다는 것이니 이 또한 초등학생도 펼치기 어려운 주장이다. ③번을 살펴보자. 대구의 옛 지명 달구화의 '달'과 탁순의 '탁'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유일한 논리인데 이를 역사학의 논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탁국이 경산이란 논리
스에마쓰는 탁국을 경산으로 비정했다. 그 논리를 살펴보자.
"탁국(㖨國)은 삼국사기의 달구화현(達句火縣; 達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쉽지만 달구화는 탁순(卓淳)에 해당하기 때문에 탁국은 달구화 남쪽 3리 남짓 떨어진 압독군(押督郡)이다. 압독의 독(督)이 탁(㖨)과 통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앞(조선어 발음 ap)은 남쪽이나 앞[前]을 의미하는 조선어 ap, arp를 나타내는 것으로, 달구화의 지리적 관계로부터 생각해 보면 어울리는 이름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군이다."
스에마쓰는 탁국(㖨國)을 대구로 비정해야 하는데 탁순을 대구로 비정했기 때문에 탁국은 경산에 비정하겠다는 것이다. 그 논리가 경산의 옛 이름이 압독군인데, 그 '압'자가 우리 말의 '앞'을 가리키기 때문에 대구 앞에 있는 경산을 탁국으로 비정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의 동쪽에 있는 경산을 앞이라고 보는 것도 희한하지만 이런 논리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탁국을 경산으로 비정하는 것도 학문의 외피를 입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라국이 합천이라는 논리
임나 7국 중 '다라국'은 경남 합천으로 비정한다. 1895년 한 손에는 일본도를 들고, 다른 손에는 석유통을 들고 경복궁 담을 넘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낭인 깡패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 그렇게 주장한 것을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추종한 결과다.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일본서기 조선지명교(日本書紀 朝鮮地名攷)》라는 책에서 "다라는 경상남도 합천의 옛 이름인 '대야(大耶)'를 가리킨다"라고 주장했다. 이 낭인 야쿠자의 위치비정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간사이자 경성제대 교수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이렇게 추종했다.
"다라(多羅)는 삼국사기의 대량주(大良州) 또 대야주(大耶州)로서 다벌(多伐)이라고도 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이다(스에마쓰 야스카즈, 《임나흥망사》)"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다라를 합천으로 주장한 근거는 '다라'의 '다(多:ta)'와 '대야'의 '대(大:tay)'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뿐이었다. 이런 허접한 논리가 지금껏 살아남아서 《일본서기》의 '다라'를 지금의 합천이라고 못 박고 대한민국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까지 했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다.
◆유네스코에 다라를 합천으로 등재신청
일본 교토(京都)시와 오사카(大阪)시 사이에 있는 오가키시(大垣市)의 미즈이시쯔(上石津)에는 다라지구(大良地區)가 있다. 대량(大良)은 다라라고 읽는데, 여기에 현재 다라성이 있었던 유적인 다라성적(多羅城跡)이 있다. 《일본서기》의 다라를 찾으려면 한자까지 같은 이런 데서 찾아야 하는데, 이런 사실은 무시하고 합천을 다라라고 유네스코에 등재신청한 것이다.
이는 합천 한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합천을 다라국이라고 명기한다는 것은 《일본서기》 신공 49년조의 기록을 한반도 정벌기사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이때부터 2백여 년 간 경상도 일대는 야마토왜의 식민지였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이다. 이런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을 국고로, 국가기관이 국제기관에 등재신청하는 나라, 순국선열들이 보시기에 한심하지 않겠는가?
◆대구출신 김석형의 일갈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김석형은 대구출신이다. 그는 1963년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분국설〉에서 임나는 한반도의 가야가 아니라 가야계가 일본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분국이라는 분국설을 제창했던 월북학자다. 그는 "이와 같은 일본학자들의 비정은 억지를 면치 못한다.
당시의 야마또 군대가 경상, 전라 두 도를 무인지경으로 돌아쳤다고 전제하고 그 일대 고지명에 비슷한 글자가 여러 글자 중에서 하나라도 있으면 주어 맞춘 것에 불과하다(김석형, 《초기조일관계사(하)》)"라고 비판했다. 굳이 역사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김석형의 논리가 초등학생들이 보기에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갈 것 같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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