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영수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11일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언시민모임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소송 원고로 나섰던 양영수 할머니가 이날 영면했다.
1929년 광주 동구 금동에서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양영수 할머니는 1944년 3월 광주대성초등학교 졸업 후 그해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당시 6학년 담임이던 야마모토라는 일본인 선생은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할 수 있다. 좋은 학교도 갈 수 있다"며 그를 회유했다.
양 할머니의 오빠 역시 징용으로 끌려가 가정 형편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양 할머니는 '내가 일본에 조금이라도 협력하면 집안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열네살에 일본으로 끌려갔다.
생전 그는 하루 종일 비행기에 들어가는 부속품에 국방생 페인트 칠을 했는데 겨울이면 손이 깨질 것 같았고, 손이 시렵고 추워서 홀딱 홀딱 뛸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고향 부모님한테 편지도 했지만 부모님 근심할까봐 '여기는 좋고, 편안하게 잘 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며 "특히 편지 내용을 사무실에서 모두 조사하기 때문에 쓰고 싶은 말을 쓸 수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해방되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위안부'로 오인하던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다는 얘기는 전혀 꺼내지 못했다.
수십년이 지난 2014년 2월27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두번째 소송 원고로 참여했다. 그는 2018년 12월5일 광주고등법원에서 1억원을 배상받을 수 있게 승소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상고로 마지막 대법원 판결 소식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유족으로는 1녀가 있으며, 빈소는 대구기독병원장례식장이다. 발인은 오는 13일, 장지는 대구 명복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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