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장수택 대구성서경찰서 두류파출소장의 아버지 고 장준필 씨

"한 번 업어 드리지도 안아 드린 기억도 없다…'사랑합니다, 아버지' 들으실 수 있을 때는 왜 못 했을까"

장수택(사진 왼쪽) 대구성서경찰서 두류파출소장과 아버지 고 장준필(사진 오른쪽) 씨가 농막에 갔을 때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장수택(사진 왼쪽) 대구성서경찰서 두류파출소장과 아버지 고 장준필(사진 오른쪽) 씨가 농막에 갔을 때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나, 이렇게 사총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고향으로 향했다. 몇 년 전부터 걷기가 힘들다 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람이라도 쐴 수 있도록 해드릴 겸 해서다.

대구에서 약 1시간 10분 거리의 고향 마을 어귀 작은 밭에는 할머니 산소가 있고 작은 농막이 있으며 아버지께서 늘 앉아 계시던 빨간 의자가 있다. 그 의자에 어떤 날은 선글라스를 착용하시고, 또 어떤 날은 중절모를 쓰시고 할머니가 바라보시는 앞산을 보시며 늘 앉아계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몰래 내 얼굴 반쪽을 넣어 사진을 찍곤 하였다. 그렇게 찍은 사진 속에는 항상 할머니 산소와 빨간 의자에 앉아 계신 아버지, 그리고 나의 반쪽 얼굴이 들어 있다. 어쩌다 밭을 매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이….

장수택 소장이 찍은 아버지의 모습. 빨간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장 소장의 아버지 고 장준필 씨. 가족 제공.
장수택 소장이 찍은 아버지의 모습. 빨간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장 소장의 아버지 고 장준필 씨. 가족 제공.

지난주 토요일은 삼총사만이 농막을 찾았다. 농막에 도착한 나는 제일 먼저 빨간 의자를 내놓았다. 하지만 나는 더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할머니 산소와 나의 반쪽 얼굴은 담을 수 있었지만, 의자에 앉은 아버지의 모습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빈 의자

장수택

장미보다 더 붉은 빈 의자 위로

무언가를 찾는 내 시선을 앉힌다.

지난달 찍었던 사진 속 구도를 끼워 맞춰 보지만

아버지의 온기마저 바람이 쓸어버린다.

참았던 눈물이 꼭 다문 입술에 고이면

나직이 새어나는 이름, 아버지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기억의 연필로

앞 산을 바라보는 당신을 그립니다.


빈 의자를 들고 아버지가 누워계신 자리 옆에 앉아 앞 산을 바라보노라니 어느샌가 아버지의 온기는 눈물이 되어 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 아래위 틀니를 작은 종지에 담가 놓고 항상 꼿꼿이 앉아 티브이를 보시다 주무시던 아버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기 싫어 남에게 부탁하거나, 식당에서 모자라는 반찬 하나도 더 달라고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노래를 잘 부르셨고, 내가 가장 많이 닮은 아버지….

내가 어릴 적 어느 여름날, 시골 마루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봇짐 장사가 집에 들어오면 당신이 드시던 밥을 먹여서 보내시거나 물 한잔이라도 먹여 보내시던 정 많고 착한 아버지셨다. 그런 아버지를 동네 분들은 항상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는 칭송을 건네주셨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버지께 못해 드린 게 너무 많다. 한 번도 업어드리지 못했고, 안아 드린 기억도 없다. 단둘이 영화를 본 적도 없고, 해외여행 한번 보내드리지 못했다. 두툼한 손을 합장하며 염원하시던 경찰서장도 되질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이 하해(河海)와 같았기에 햇살 좋은 날 명상을 하시듯 앉은 자세로 2023년 4월 5일 저녁에 영면(永眠)하셨다. 영안실에서 마지막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생전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버지가 들으 실수 있을 때는 왜 몰랐을까? 하얀 수의를 입고 누워 계신 싸늘한 아버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며 목 놓아 울면서 처음으로 외쳤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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