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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여객기 비상구가 만든 ‘비상사태’…더 이상 시민들의 선의에 기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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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언 사회부 기자

지난 26일 승객들이 탑승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착륙 직전 출입문이 열린 채 비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 49분 제주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8124편 여객기가 12시 45분 대구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출입문이 갑자기 열렸다. 독자 제공
지난 26일 승객들이 탑승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착륙 직전 출입문이 열린 채 비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 49분 제주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8124편 여객기가 12시 45분 대구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출입문이 갑자기 열렸다. 독자 제공
신중언 기자
신중언 기자

분명 예상키 어려운 돌발 사고였다. 그러나 사전에 대비가 돼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19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가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대구국제공항에 착륙한 사고 얘기다.

지난 26일 승객 194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비상구가 열린 상태로 대구공항에 착륙한 사고가 발생했다. 비상구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이모(33) 씨가 약 210m 상공에서 비상구 출입문을 열었고, 기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거센 바람과 함께 굉음이 밀려들었다.

이 항공편에는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할 제주 지역 초·중학생 등도 탑승해 있었다. 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지옥 같은 몇 분을 견뎌야 했다.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 승객들이 의지했던 안전장치는 안전띠 하나뿐이었다.

결국 위기를 해소한 것은 사람의 선의였다. 여객기에 탑승한 시민들과 승무원들이 힘을 합쳐 추가 사고를 막았다. 이들은 착륙 후 활주로를 달리던 여객기에서 뛰어내리려 한 이 씨를 제압했다. 한 승무원은 열린 비상구 출입문을 온몸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이 씨가 지난 28일 구속되면서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여객기 비상구 안전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다. "답답해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던 이 씨의 진술에서도 드러나듯 이번 사고는 돌발적으로 발생했다. 재발 가능성과 사전 예방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비행 중인 여객기의 비상구를 안에서 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높은 순항고도에서 비행하고 있을 땐 기내 안팎 기압 차이 때문에 강제로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다. 이번처럼 착륙 직전과 이륙 직후 등 지상 300m 이하의 저고도 운항 상태에서만 기압 차이가 감소해 사람의 힘으로도 문을 열 수 있다.

사고 발생 여객기(A321-200)처럼 일부 중소형 기종이 가진 안전상 취약점도 있다. 이런 기종들은 대부분 비상구 잠금장치가 없고, 비상구 좌석과 출입문 사이의 거리도 팔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다. 같은 기종이라면 이번과 비슷한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승객들이 항공기 출입문을 열거나 열려고 시도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2019년 9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하던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승객이 비상구 개방을 시도해 이륙 4시간 만에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17년 2월에는 이륙을 준비하던 인천발 베트남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비상 출입문 레버를 화장실 문손잡이로 착각한 승객의 실수로 출입문이 열려 두 시간 넘게 이륙이 늦어진 일도 있었다.

사고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사고 항공기와 같은 기종의 비상구 앞자리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효성은 의문이다. 비상구 앞자리 승객은 비상 상황 시 탈출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 좌석을 비워 두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승무원 좌석을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거나 안전 요원을 배치하는 등의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묶였던 방역 규제들이 풀리며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하는 시점이다. 정부와 항공사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여객기 승객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재난을 막는 건 개인의 선의가 아닌, 시스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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