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박훈정표 누아르에 블랙 코미디 가미된 추격전…‘귀공자’

'귀공자'의 한 장면.
'귀공자'의 한 장면.

박훈정 감독은 '신세계'(2013), '마녀'(2018), '낙원의 밤'(2021) 등 폭력에서 광기 어린 인간의 내면을 줄기차게 찾아온 감독이다. 이번 주 개봉한 '귀공자' 또한 그의 일관된 폼을 보여준다. 박훈정표 누아르에 블랙 코미디가 가미된 추격전을 2시간에 걸쳐 보여준다.

마르코(강태주)는 코피노다. 한국인과 필리핀인의 혼혈이다. 병든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박 복싱시합에도 나간다. 그래서 옷은 남루하고, 얼굴에는 언제나 멍과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런 마르코를 정장 차림의 말쑥한 귀공자(김선호)가 쫓는다. 어느 날 한국에서 온 변호사가 마르코를 찾아온다. 부자가 된 아버지가 아들을 찾는다는 것이다. 마르코는 이들과 함께 한국에 오고 귀공자를 비롯해 재벌 2세인 한이사(김강우)와 미스터리한 여인 윤주(고아라)까지 마르코를 두고 치열한 추격전을 벌인다.

'귀공자'는 영화의 절반이 넘도록 추격전만 벌인다. 마르코는 왜 한국에 오고, 검은 차에 탄 무리들은 왜 그를 쫓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오로지 쫓고 쫓기는 카체이싱과 소음기를 단 총질만 난무한다.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혼란이 이어진다.

사실 이 영화에서 서사는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허술하리 만큼 단순하고, 명쾌하다. 오로지 영화는 캐릭터에만 집중한다. 세 명의 캐릭터가 벌이는 추격전이다.

'귀공자'의 한 장면.
'귀공자'의 한 장면.

마르코는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이 급한 착한 아들이다. 어느 날 왜 찾을까라는 의심도 없이 무작정 한국으로 날아오고, 이후 추격전에 휩싸인다.

귀공자는 고급 승용차와 명품 옷을 입는 프로 킬러다. 타깃을 놓쳐 본 적이 없다고 자부할 만큼 좋은 솜씨를 보여 준다. 한이사는 폭력적이다. 검은 정장 차림의 부하들을 몰고 다니며 산탄총으로 사람들을 갈긴다.

영화는 이 세 캐릭터의 정체 모를 추격전이 주된 관심사다. '어리숙한 놈', '뺀질한 놈', '과격한 놈'의 쫓고 쫓기는 힘의 게임이 전반부를 장식한다. 후반에 가서 귀공자는 왜 마르코를 구해야 하는지, 한이사는 왜 마르코가 필요한지가 드러난다.

높은 경쟁률을 뚫은 신인 배우 강태주의 이미지는 상당히 사실적이다. 영어에 능숙하지만 한국어는 어눌한 대사는 실제 코피노 같은 느낌을 준다. 혼란이 거듭되는 속에서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 연기도 좋다.

두드러지는 액션이 많지 않지만, 마지막 액션신은 역시 박훈정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피와 총격, 칼이 섬뜩하게 난무한다.

'귀공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작품에 간섭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제작 관습으로 인해 감독이 마음대로(?) 창작할 수 있는, 그래서 감독의 실험성이 과도하게 녹아든 작품이란 뜻이다.

박훈정 감독은 '신세계'의 화려하면서 치밀한 인물의 관계 설정이나, '마녀'의 풍부한 상상력이 지닌 서사보다 '귀공자'는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박훈정 감독의 필모그래피로 봤을 때 전작들과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귀공자'의 한 장면.
'귀공자'의 한 장면.

김선호는 귀공자풍의 젊은 킬러의 풍모를 잘 보여주고, 김강우 또한 잔인하고 자비가 없는 폭력적 광기를 잘 보여준다. 실없는 농담처럼 간혹 터지는 유머도 극적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캐릭터 각각의 외형적 성격은 잘 드러나지만, 그 성격들이 극을 통해 결집되고, 성장하지는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캐릭터 영화는 캐릭터가 역동적이야 살아있는 맛을 준다. 그러나 '귀공자'의 캐릭터들은 다소 정형화돼 있다.

귀공자는 댄디한 이미지와 이로 인해 유발되는 유머가 반전 없이 계속 이어진다. 차로 쫓고, 차에서 탈출하는 추격전의 반복처럼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처럼 만화적 설정에서 오는 비현실적 상황에 겉멋만 잔뜩 든 모습이다.

한이사 또한 광기가 연속된다. 그가 제주도의 넓은 벌판에서 벌이는 인정사정없는 살육은 끔찍한 그의 광기를 잘 보여준다. 이후 냉혹한 악역으로 일관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 보니 캐릭터의 내면이 입체적이지 않고 고정돼 버린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이 살아나지 않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돼 버렸다.

멋에 집중한 박훈정 감독의 일관되게 펼쳐지는 추격전은 그나마 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118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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