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주옥 같은 영화 OST 탄생 시킨 그의 마법…‘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 그린 다큐멘터리
시네마천국,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영화음악 탄생 비화와 그의 예술혼 감동적으로 담아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1928~2020).

그는 400여 편의 영화에 생명을 불어 넣는 마법을 부렸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오선지 위에 그려낸 수많은 음표처럼 우리를 감동시키는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5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시네마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생전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열정, 고통과 영광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156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술 같은 영화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1928년 11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트럼펫과 음악 이론을 배웠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그에게 중고 트럼펫을 사주면서 "이 트럼펫으로 가족을 책임지라"고 했다.

국립음악원에서 트럼펫 외에 작곡과 지휘도 같이 배웠지만 무엇보다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스승인 현대음악의 대가 고프레도 페트라시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가명을 쓰며 편곡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영화음악 일도 곁들이게 됐다. 이때만 해도 영화음악은 단순히 영화에 양념으로 쓰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남들과 달랐다. 영화에 색감을 입히듯 캐릭터의 특징과 행동을 음악으로 살려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초등학교 동창인 셀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는 그의 대표작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의 결정판이다. 선명한 권선징악, 남성적 감성, 비장미 등으로 미국 서부극과 차별화를 이루며 인기를 끌었다. 음악을 맡은 엔니오 모리꼬네는 휘파람과 나무판 부딪치는 소리, 오카리나와 같은 흔치 않은 악기와 음향을 활용해 황야의 비정함과 황량함 등을 더했다.

어느 날, 그는 무대에서 스태프가 지지하고 있던 사다리가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나무가 갈라지듯 나는 파열음이었다. 이때 느낀 긴장을 이들 영화에 녹여 넣었다. 20대에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소음을 활용한 현대음악에 심취했던 것도 한몫을 했지만, 이 작은 경험을 놓치지 않은 것은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영화음악뿐 아니라 순수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도 잘 그려낸다. 특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다리오 아르젠토 등 1960, 70년대 이탈리아 감독의 문제작들을 볼 수 있는 귀한 경험도 선사한다.

"음악은 음표로 쌓은 건축과 같다. 같은 벽돌을 쓰지만 모두 다른 모양의 건축물이 탄생한다"는 그의 말대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천국', '미션', '언터처블',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 주옥 같은 OST로 수많은 관객들을 그만의 감성으로 감동시켰다.

영화는 '원스 오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데보라의 테마' 등 각 곡들의 탄생 비화를 거장의 입을 통해 들어보는 기회도 준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의 한 장면.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의 오보에 연주는 마치 신의 소리처럼 원주민들을 울린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떨리듯 오보에를 꺼내 불던 제레미 아이언스의 파르르 떨리던 눈빛과 젖은 머리카락, 오보에를 연주하던 손. 자신의 신념을 전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오보에 하나만을 들고 찾아간 종교적, 신앙적 신념이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거장의 지휘를 통해 '미션'의 테마곡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으로 전곡을 감상하는 장면은 특히 전율할 정도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비롯해 수많은 음악가와 가수, 감독들이 출연해 그를 회고하며 헌사를 남기는데, 마치 한 시대를 요약 정리하는 듯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젖게 한다.

그는 수많은 걸작을 남겼지만,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만 수상했다. '미션', '언터처블', '말레나', '벅시' 등이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시네마천국'이나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아예 음악상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수많은 이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폐쇄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었다. 그는 '헤이트풀8'의 음악을 엔니오에게 간청했고, 결국 2015년 음악인생 70년 만에 아카데미음악상을 엔니오 모리꼬네의 품에 안겼다.

'엔니오:더 마에스트로'는 위대한 음악가의 예술혼을 감동적으로 담은 영화다. 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엔니오 모리꼬네는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죠"라는 말처럼 그의 음표 하나하나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어 더욱 벅차고 아름다운 영화다. 156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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