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대학교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서울'이라는 입지만으로 결정되는 유·무형의 수도권 프리미엄을 인지한다.
지방거점 국립대를 포기하고 '인(in) 서울' 대학으로 향하는 상위권 수험생들의 사례는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수도권 기업 취업을 원하는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 사이에선 취업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주소지를 서울로 작성해 원서를 내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으로 교육, 직장 등 각종 사회 인프라가 집중되는 가운데, 출산율 감소의 여파는 지방의 기업, 학교 등을 고사시키고 있다.
◆"같은 입결(입시 결과)이라면 인 서울 대학"
올해 대학교 새내기로 입학한 윤성준(가명·19) 씨는 고심 끝에 경북대 합격증을 뒤로하고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에 입학했다. 재적 학생 수로 따지면 경북대의 3분의 1에 불과한 사립대다.
등록금과 접근성을 고려하면 고향에 있는 국립대에 진학하는 게 더 나았겠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서울 생활'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인프라가 뛰어난 서울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최소한 대학부터 서울에서 다니며 네트워크와 기반을 다지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학교 현장에서 고3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학생, 학부모들이 갈수록 인 서울 대학을 선호하는 열기에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구 한 고등학교 교사 A씨는 "10여 년 전 같으면 상위권 학생들이 관심도 없었을 인 서울 4년제 대학이, 최근에는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지망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지역에 있는 대학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울 생활을 하고 싶은 동경의 마음, 그리고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취준생도 수도권 프리미엄?
서울 기업에 취업을 원하는 취준생 사이에선 '주소지 수도권 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고 있다.
2년여간의 취업 준비 끝에 수도권의 한 전시관 취업에 성공한 서규리(가명·28) 씨는 수도권에 있는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하는데 집은 어떻게 구할 거예요?'란 질문을 받았다.
다른 지원자들에겐 직무 관련 질문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서 씨를 포함해 지방에서 온 지원자들에겐 늘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굳이 이 질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서 씨는 면접을 본 5개의 회사에서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질문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서 씨는 취업 준비 2년 차부터 서울에 살고 있는 사촌 언니의 집 주소를 원서에 적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서류 전형 합격률이 올라갔고 3개월 뒤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당시 3개월 간격으로 인턴을 채용하는 회사가 있었는데 대구 주소로 이력서를 냈을 때는 서류에서 탈락했지만 3개월 뒤 같은 스펙으로 주소만 서울로 바꿔 지원을 하니 최종 합격까지 했었다"며 "100% 주소 때문이라고 설명은 안 되겠지만 취준생 입장에선 지방 출신이란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신입 뽑고 싶은데 사람이 없어"
젊은 인구가 줄면서 지역 기업 가운데선 신입 직원을 채용해 양성하는 체계를 포기하는 곳이 많아졌다. 대신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중고 신입'을 채용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경북 경산에 있는 차 부품업체 B사 관계자는 약 15년 전과 지금의 '인재 수급'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남부권 지방거점국립대는 물론 수도권 대학에서도 차·금속·기계 관련 학과 출신 직원의 공채 지원이 연간 100여 명 이상 잇따랐지만, 올해 들어서는 공채를 계속 유지해도 될지 걱정이 될 정도로 지원자가 줄었다.
제조업체 인기가 줄어 뛰어난 직원을 뽑기 어려워진 데다 연구직, 사무직 지원자는 죄다 수도권 기업으로 쏠리다 보니 수시채용 때 수도권 2, 3차 협력사에 다니던 지역 출신 중고 신입을 '스카웃'하는 형태가 되곤 한다.
A사 관계자는 "1990년대만 해도 지역 유망 기업이면 서로 입사하려고 다퉜으나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다. '대구경북 대표 기업'이라는 타이틀이나 해외 공장 여부도 지원자들에겐 예전만큼 메리트가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반대로 구직자들 사이에선 "지역 기업의 미래가 안 보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구경북에서 초임 연봉 3천만원을 넘기는 '꿈의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20대 중후반쯤 첫 직장에 입사하면 25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대구와 경북 경산시의 59형(20평 중반대)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이미 3억원을 넘는데, 이는 월급의 대부분을 10년가량 모아야 겨우 계약금과 잔금을 지불할 수 있는 정도다.
기업 스스로도 장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연간 채용 정원을 점차 줄이는 모양새다. 이러니 구직자들 입장에선 지역 기업에서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일쑤다.
대구 한 소비재 업체 상무 C씨는 "수도권에 연구·영업용 안테나 사무실을 내고 양질의 인재를 채용하는 방안을 고려한 적이 있다. 수도권 기업들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 계획을 철회했다"면서 "제공할 수 있는 임금과 일자리에는 한계가 있고 우수한 구직자는 갈수록 지원율이 줄어드니 고민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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