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한 소설 속 문장을 며칠째 곱씹고 있다. 지난 17일 희움 역사관의 문을 열었을 때 어렴풋하게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가고 나면 들어서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마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가 담긴 전시를 찬찬히 살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흔히 말한다. 희움 역사관 취재를 한 후에는 그 말이 조금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일상적이고 쉬울 것만 같은 대화가 실은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 역사를 기억하려 아등바등하는 애씀이 그 작은 역사관에, 번잡한 사무실에, 많이 쳐 줘야 두 평 남짓한 작은 수장고에 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저 '쌓여만' 있었다.
수장고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유품뿐 아니라 피해를 증언한 기록들이 한가득이었다. 희움 역사관을 운영하는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안네 프랑크의 집처럼 피해 할머님들의 역사를 고증하고 싶지만 장소도 협소하고 운영난, 인력난에 기록물을 활용하기 힘들다"고 아쉬운 듯 덤덤하게 말했다.
역사관의 열악한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시작은 지난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 취재차 참석했을 때였다. 행사 장소인 대구 중구 오오극장에 갔고, 규모도 참석자도 간소해 당혹스러웠다.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슈란 제법 주류의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해서였다.
대구경북 피해자이자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이용수 할머니와 박필근 할머니도 행사에 없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서울시 행사에, 박필근 할머니는 포항시 행사에 가셨다고 했다. 대구시나 중구 등 관련 단체장도 그 자리에 없었다. 시민들의 참석을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대구시는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도, 시민도 타 지자체에 그야말로 빼앗기고 있었다. 지자체의 무관심에 지역 고유 역사가 갈취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행사를 주관하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역사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지자체의 외면으로 이들은 만성적인 인력난을 호소했다. 이들에게 희움 역사관 운영이란 해야만 하는 것이라기보다 선택과 집중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 차원의 노력은 요원하다. '근대 문화 역사'를 콘텐츠화해서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는 중구청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관해 무관심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지원은 대구시에서 맡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시는 '기림의 날' 행사에만 연 500만 원의 시비를 지원할 뿐 다른 지원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희움 역사관의 문은 '기림의 날'인 14일에도, 광복절인 15일에도 굳게 닫혔다. 애써 찾아온 관광객은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발걸음을 돌린 것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역사관에 들어섬으로써 입장하기 전 한 인간의 삶과, 그 후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 것에 다름없다.
아픈 역사는 예방의 차원에서라도 끊임없이 소환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대구경북권 일본군 '위안부'의 현재는 과거와 단절되는 중이다. 이 중단된 대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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