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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홍범도 장군은 ‘국군의 뿌리’가 아닌 항일 무장투쟁 주역으로 기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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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이전 논란이 홍범도 장군 흉상만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정리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가닥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은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이기에 그 공로를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며 "다만 지금의 육사보다 독립기념관 같은 곳에서 기리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 장군 흉상 이전이 공적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현양(顯揚) 확산이란 점에서 합리적인 판단이다.

홍 장군은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주역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1921년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벌어진 독립군 간 주도권 타툼 과정에서 독립군끼리 교전을 벌인 '자유시 참변' 당시 홍 장군이 러시아 공산 당국의 무장 해제 지시를 거부한 독립군 재판에서 재판위원을 지내 공산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논란이 있다.

또 자유시 참변 보고로 레닌을 만났을 때 레닌의 서명이 새겨진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상으로 받았으며, 1927년 소련 볼셰비키 당원이 됐고 모스크바 국제공산당 대회에도 참석했다. 은퇴한 뒤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도 받았다는 소련 기록이 있다.

이런 행적이 홍 장군의 자발적 의지인지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 소련의 도움이 필요했던 불가피한 사정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홍 장군이 공산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 자체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민족 상잔의 비극을 겪었고 지금도 북한 공산 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홍 장군을 문재인 정권처럼 '우리 군의 출발점'으로 인정하는 데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국군의 출발점'은 엄밀하게 말해 1946년 미 군정하에서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대'이다. 홍 장군과 남조선 국방경비대는 어떤 연결 고리도 없다. 그런 점에서도 홍 장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홍 장군 흉상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육사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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