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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초대석-전병서] 한국, '퍼스트 펭귄'의 담대한 도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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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대한민국 경제를 상징하던 거대한 신화 하나가 마침표를 찍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대중국 무역 흑자가 최근 3년 사이 충격적인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단순한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와 축구 빼고는 이젠 중국보다 잘하는 것이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는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의존해온 제조업에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의 유효기간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미국과 일본의 선진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효율적으로 양산하던 추격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개척해야 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숙명만이 우리 앞에 남았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야기한 거대한 지각 변동은 한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유례 없는 기회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첨단기술의 울타리를 높이고 있고, 중국은 이에 맞서 자립적 공급망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가운 바다에 가장 먼저 몸을 던지는 '퍼스트 펭귄'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리스크를 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리스크를 '전략적 가치'로 전환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퍼스트 무버의 영역은 명확하다. 단순히 범용 AI 모델을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AI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 최적화' 분야에서 세계 표준을 주도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역량을 지렛대 삼아 '고성능 온디바이스 AI'와 '맞춤형 AI 추론 칩' 생태계를 선점한다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미국과 대등한 기술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안보 자산'으로 격상시키는 전략적 승부수다.

퍼스트 무버로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국가 전반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첫째, 교육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주어진 문제를 남보다 빠르게 푸는 '팔로워' 양성에 최적화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상아탑을 넘어 산업 현장과 유기적으로 결합한 'AI R&D 허브'가 되어야 하며, 전 국민의 AI 문해력(Literacy)을 기본 역량으로 끌어올리는 국가적 교육 혁명이 단행되어야 한다.

둘째, 규제의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과감한 이행이다.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혁신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데이터 주권을 지키면서도 데이터의 흐름을 자유롭게 하는 유연한 규제 혁신은 AI 시대의 생존 요건이다. 실패한 기업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재도전 안전망'을 구축하여 리스크 테이킹이 보상받는 문화도 정착시켜야 한다.

셋째, 기업의 파괴적 자강(自强) 전략이다. 대기업은 기득권 수호에서 벗어나 스타트업과 상생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주도해야 한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초격차 기술'과 '창의적 비즈니스 모델' 뿐이다. 단순 제조 공정의 효율화를 넘어 AI가 결합된 고도의 서비스 솔루션을 수출하는 구조로 산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지금 가장 깊고 차가운 바다 앞에 서 있다. 전통 제조업에서 팔로워의 안온함은 사라졌고, 대중 무역 적자의 수치는 냉정한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퍼스트 펭귄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이유는 그곳에 가장 풍부하고 신선한 먹잇감이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와 미·중 경제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한국이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진정한 글로벌 선도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이다.

우리가 스스로 길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를 주저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강대국들의 전장(戰場)에서 자원을 공급하는 하청 기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제 '정답'이 없는 시대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길을 만드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찬 바닷속으로 먼저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처럼 한국의 찬란한 내일은 오늘 우리가 미래의 불확실한 바다로 뛰어드는 과감한 발걸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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