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이무영 영남대 명예교수의 동료이자 은사 고 프리드리히 클루게 씨

"당신이 뿌렸던 독일식 실용 교육, 국내 기술교육의 질을 새로이 높이는 밑거름 됐습니다"

프리드리히 클루게(오른쪽 두 번째) 씨가 독일로 귀국할 당시 김포공항에서 촬영한 사진. 이무영 영남대 명예교수는 왼쪽 두 번째에 있다. 이무영 영남대 명예교수 제공.
프리드리히 클루게(오른쪽 두 번째) 씨가 독일로 귀국할 당시 김포공항에서 촬영한 사진. 이무영 영남대 명예교수는 왼쪽 두 번째에 있다. 이무영 영남대 명예교수 제공.

존경하는 "프리드리히 클루게" 선생님. 당신이 한국을 떠나신 지 어느 새 반 세기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신의 부음(訃音)을 들은 지도 10여년이 된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만, 당신에 대한 나의 강렬한 인상은 오히려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때는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돼 있던 1961년 여름 서독 수도 '본'의 시청에서였습니다. 호리호리한 키에 회색코트,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마치 정통 프로이센 귀족 같은 노신사가 들어오더군요. 그 때, 나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그 해 소령으로 제대했던 29세 청년이었고, 정부장학금으로 서독의 공업교육자 양성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아들뻘인 저를 보고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내가 한독기술협력 협정에 따라 당신들과 함께 한국에 파견될 기술고문단 단장입니다"라고 한 뒤 내 손을 꽉 잡았었지요.

연수 과정을 수료한 후 이듬해에 당신과 함께 귀국, 인천의 인하대 공대 안에 '서독부'라는 부설 학교를 만들었지요. 선생님은 서독부 학장으로 일하며 개교하자마자 건물설비부터 교과과정과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독일식으로 만들었지요. 또 7시 등교, 실기 수업 대폭 강화, 실습 내용부터 학교 설비 제작까지 독일식 기구를 이용하는 등 마치 '프로이센 군대' 식의 엄격한 스파르타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당시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교수들에게도 불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직도 사회 분위기가 '스파르타식 교육'이 먹혀들어갈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한국이 지금의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선진국 수준으로 부지런해야 한다"며 "공업학교 학생이 옛날 서당 서생처럼 늦게 일어나 깨끗한 옷에 책만 읽고 실기 없이 실험만 하고 있다면 산업재건이나 경제 건설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말로 고집을 꺾지 않으셨지요.

독일 원조물자를 받아왔을 때 당신은 칠판, 분필, 옷걸이, 심지어 양변기까지 들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한국 실정과 안 맞다", "예산 낭비"라며 조소할 때마다 당신은 "학생들은 미래 개척의 주역인데 이들이 헐어빠진 칠판에 가루 날리는 분필을 쓰고 옷걸이 대신 못 박아서 옷 걸고 푸세식 변소만 알고 산다면 선진국 되긴 틀렸다"고 자극하셨습니다.

한국 교사들이 불평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신이 직접 솔선수범했기 때문입니다. 오전 6시에 등교해 밤낮 안 가리고 교내를 돌며 시설 공사를 직접 살피고, 설계하고, 교재를 만들고…. 한국의 학장들이나 교장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손수 했으니 한국인들은 놀랄 수밖에요.

그러나 당신을 배척하는 학생들의 동맹휴학까지 벌어지자 저는 학생들을 설득하는 데 모진 애를 썼습니다. 상위 기관들도 도와주지 않았고 당신이 데려 온 독일인 전문가들까지도 반기를 든 탓에 당신은 그 고집을 꺾고 맙니다. 그러면서 그 해 10월, "이 나라에 경제 선진화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라는 어느 유명한 서양인이 한 말과 비슷한 말을 남기고는 이 땅을 떠나셨지요.

당신이 뿌렸던 독일식 실용교육의 씨앗은 다행이 헛되지 않았고 꾸준히 자라서 국내 기술교육의 질을 새로이 높이는 데 밑거름이 됐습니다. 하늘 위에서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당신이 말했던 '희망 없는 나라'는 이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고,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가로 자라났습니다.

선생이 이 세상을 떠난 지도 10여년이 되었고 이제는 저 또한 선생이 떠나가신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대구시지부 동구지회를 통해 말년에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중입니다. 저 역시 머지 않아 당신 곁으로 가겠지만 아무쪼록 하늘에서라도 발전된 대한민국을 보며 당신이 마신 고배가 헛되지 않았음을 기뻐해 주십시오. 한때나마 귀하가 명예를 바쳐 사랑했던 이 한국의 미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 긴 편지를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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