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영의 풍수 이야기]〈17〉전북 순창군 대마마을 말 명당

용마산 남동쪽 김극뉴 묘소, 천마가 울며 바람 가르는 듯 해(天馬嘶風形)
원래 장인 신후지지였던 곳…외손 위해 양보 또는 딸이 채갔다는 설 전해져
광산김씨 명문 도약 계기…정승 5명·대제학 7명 등 인재 배출

대마마을 입구에서 보이는 주산은 힘이 넘친다. 혈장 또한 깔끔하다. 내청룡이 약한 단점은 있으나 외청룡이 겹겹이 감싸고 있어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백호가 좋은 모습이다.
대마마을 입구에서 보이는 주산은 힘이 넘친다. 혈장 또한 깔끔하다. 내청룡이 약한 단점은 있으나 외청룡이 겹겹이 감싸고 있어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백호가 좋은 모습이다.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馬屹里) 대마(大馬)마을 뒤편 산록에는 조선 8대 명당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만큼 천하명당으로 알려진 말 명당 광산김씨(光山金氏) 김극뉴(金克忸·1436~1496)의 묘소가 있다.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답 코스이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간산을 가는 풍수 관광 명소이다. 순창군은 '김극뉴 묘역'을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강천산(584m)이 동진하면서 무이산(558m)을 기봉하고 다시 북쪽으로 뻗어가다가 성미산(589m), 두류봉 사이에서 갈라져 건지산(412m)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두 개의 봉우리를 만든다. 뒤 봉우리를 큰 수리봉, 앞의 말 어깨처럼 생긴 봉우리를 작은 수리봉이라 부르는 용마산(龍馬山)으로 천마시풍형(天馬嘶風形)의 주산(主山)이다.

김극뉴 묘.천마시풍형의 혈처는 천마의 입이나 코 자리가 진혈처인데 그 자리에 김극뉴 묘소가 있다.
김극뉴 묘.천마시풍형의 혈처는 천마의 입이나 코 자리가 진혈처인데 그 자리에 김극뉴 묘소가 있다.

◆ 천마의 입이나 코 자리가 진혈처

마흘이라는 마을 이름도 용마산이 말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김극뉴의 묘소는 바로 이 용마산의 남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 형상이 마치 천마가 바람을 가르며 '히히잉'하고 우는 모습과 같다 하여 천마시풍형으로 불린다. 또 천마가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모습 같기도 하여 천마등공형(天馬登空形), 미끈한 몸매의 말이 바람을 맞으며 우는 형상이라 하여 호마시풍형(胡馬嘶風形), 목마른 용마가 물을 찾는 형상이라 하여 용마음수형(龍馬飮水形)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리의 상단에는 그의 장인 함양박씨(咸陽朴氏) 박예(朴隸) 부부 합장묘가 자리하고, 바로 아래에는 그의 부인 묘, 그 아래에 김극뉴의 묘소가 있다. 자리는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말 중에서도 백마(白馬)이다.

묘소 아래에는 옆구리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특이한 구릉이 있다. 용맥이 급하게 내려오면 혈(穴)을 맺기 위해서 이처럼 아래에서 받혀주는 역할을 하는 지각이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한다. 이곳이 그런 역할을 하는 산줄기이다. 이곳 상단에 김극뉴의 현손 김희(金僖)의 묘, 그 아래에 둘째 아들인 김소윤(金昭胤), 손자 김개(金鎧), 맨 아래에는 사위와 딸의 합장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천마시풍형의 혈처는 천마의 입이나 코 자리가 진혈처인데 그 자리에 김극뉴 묘소가 있다. 그런데 이 자리가 천하의 명혈이라 후손들이 번성했다고 주장하는 풍수사들도 많이 있지만 명혈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풍수사들도 일부 있다. 현장을 방문하여 그 진위를 확인해 본다.

김극뉴 묘에서 바라 본 안산
김극뉴 묘에서 바라 본 안산

◆ 인물이 줄줄이 나올 수 있는 조건 갖춰

대마마을 입구에서 보이는 주산은 힘이 넘친다. 혈장 또한 깔끔하다. 내청룡이 약한 단점은 있으나 외청룡이 겹겹이 감싸고 있어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백호가 좋은 모습이다. 안산(案山)은 성좌(星座) 즉, 별이 내려앉은 모습이다.

이곳은 조산과 주변 사격이 예사롭지 않다. 문필봉(文筆峰), 대필사(大筆砂), 천마사(天馬砂), 부봉사(富峰砂) 등 수려한 귀사(貴砂)가 줄을 잇고 있으니, 인물이 줄줄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이러한 곳이 대명당이 될 수 있다. 또한 미방(未方)에 수려한 목성체가 있는데 이 방위는 예로부터 한림·진사·장원 벼슬을 한다는 방위이다. 이곳 국세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대제학(大提學)을 연이어 배출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연화문사(蓮花紋砂)가 있다는 것이다. ​

김극뉴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처음에는 음사로 벼슬에 나갔으나 33세에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김문(金問)과 열녀 양천허씨(烈女陽川許氏)의 증손으로 조부는 김철산(金鐵山)이고, 부친은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金國光)이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가 좌의정 시절 8개월간 혼자 의정부(議政府)를 맡았는데 이 점을 부끄럽게 여겨 '너라도 자라서는 이런 부끄러움을 꼭 이겨내라'는 뜻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를 생각하면 '극뉵(克忸)'라고 호칭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이나 '뉴'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극뉴'라 한다. ​

김극뉴 묘에서 바라 본 안산.묘 자리의 상단에는 그의 장인 함양박씨 박예 부부 합장묘가 자리하고, 바로 아래에는 그의 부인 묘, 그 아래에 김극뉴의 묘소가 있다. 자리는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말 중에서도 백마이다.
김극뉴 묘에서 바라 본 안산.묘 자리의 상단에는 그의 장인 함양박씨 박예 부부 합장묘가 자리하고, 바로 아래에는 그의 부인 묘, 그 아래에 김극뉴의 묘소가 있다. 자리는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말 중에서도 백마이다.

◆ 원래 장인 박 감찰이 묻힐 자리

이 묘에 전해오는 풍수 설화에 의하면 원래 김극뉴가 묻힌 자리는 그의 장인인 박 감찰의 신후지지(身後之地,죽기 전에 미리 잡아 두는 묏자리)였다고 한다. 장인은 삼 형제로 모두 풍수지리에 능통하였는데,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죽으면 묻힐 신후지지를 잡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형인 박 감찰은 이곳의 말 명당을, 둘째는 임실 갈담의 잉어 명당을, 셋째는 임실 가실 마을 앞의 금계포란형을 잡았다고 한다. 나중에 3형제가 현장 확인을 해 보니 큰형인 박 감찰이 잡은 자리가 최고라 평가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박 감찰에게는 외동딸만 있었고 아들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제사를 받들어 줄 아들이 없으므로 사위가 좋은 자리에 들어가 외손이 번창하면 자신의 제사는 받들어 줄 것이라 믿고 사위에게 자신의 신후지지를 양보하고, 자신은 그 뒤편에 묻혔다고 하는 설이 있고,

또 다른 설화는 박 감찰이 사위에게 양보한 것이 아니라 이 자리가 아주 좋은 자리임을 안 딸이 꾀를 써서 채갔다는 것이다. 박 감찰이 죽어 이 자리에 묻으려고 묘를 쓰기 전날 광중을 파 놓았는데, 그의 딸이 이날 밤 광중에 물을 잔뜩 부어 물이 나오는 흉지(凶地)처럼 꾸몄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지금의 자리인 뒤로 올렸다고 한다.​

어쨌든 이 묘를 쓰고 난 이후 김극뉴의 후손들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하니 광산김씨가 조선의 명문가로 발돋움한 계기가 된 곳임은 틀림없다. 조선조 3대 명문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광산김씨는 김극뉴의 현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과 그의 아들 김집(金集·1574∼1656))이 예학(禮學)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사후에 동방 18현(東方 18賢)에 추앙되어 한 가문에서 부자간에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었고, 정승 5명, 대제학 7명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렇다면 광산 김문의 번성이 이 말 명당 한자리만으로 가능했을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 자리와 더불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수락산(167m) 산록에 있는 손자 김호(金鎬) 묘소 등 후손들이 잇따라 명당을 취한 덕분으로 명문가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본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에도 이에 못지않은 천마시풍형의 말 명당이 있다. 마을 이름이 천마시풍형에서 따온 마시리(馬嘶里)이다. 지명을 붙일 정도로 좋은 자리이기는 하나 여기에는 큰 인물 배출이 없다. 이는 아직도 자리가 비워져 있음을 뜻한다. 순창의 말 명당과는 산세가 차이가 있기는 하나 오좌 자향(午坐子向))의 자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선비보다는 무인(武人)이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마시리에 있는 경북대학교 교수촌 상단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면 멋진 천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문이 이른바 명문으로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연이어 3기 이상 또는 한 대 걸쳐 명혈을 얻어야 가능하다. 광산김씨 사계 문중도 이러한 경우이다.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풍수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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