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현실과의 끈 떨어진 마블 히어로물…‘더 마블스’

'더 마블스'의 한 장면.
'더 마블스'의 한 장면.

영화는 현실과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 끈이 끊어지거나, 느슨해지면 관객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슈퍼 히어로를 등장시키는 공상과학영화도 마찬가지다.

'아이언맨'(2008)의 토니 스타크가 원래 슈퍼 파워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세계적인 무기업체의 CEO에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억만장자지만, 그의 파워는 누구나 꿈꿀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테러단체에 납치돼 조잡한 쇳조각으로 아이언 슈트를 만들어 탈출한다. 그리고 향락에 젖어 있던 그가 내면의 선함을 깨닫고 인류를 위한 슈퍼 히어로로 등극한다. 이런 서사는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5년 후 현재의 마블 스튜디오는 어떨까. '더 마블스'(감독 니아 다코스타)가 지난 8일 개봉했다. 마블 프랜차이즈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는 점잖은 표현을 던진다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마블 신작이다.

'더 마블스'는 마블 세 자매가 펼치는 우주 액션물이다. 2018년 개봉한 '캡틴 마블'의 후속편이다. 세 여성이 주인공이다. 캡틴 마블(브리 라슨)을 중심으로 친구의 딸인 모니카(테요나 패리스), 10대 캡틴 마블 광팬 소녀 카말라(이만 벨라니)가 각기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돼 우주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줄거리다.

캡틴 마블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사악한 다르 벤(자웨 애쉬튼)이 우주의 힘을 얻기 위해 팔 밴드무기인 뱅글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찾고 보니 한 짝뿐이다. 다른 한 짝을 지구에 있는 말썽쟁이 소녀 카말라가 차고 있다. 할머니가 남긴 유물로 뱅글의 숨겨진 힘을 알게 된 카말라는 미즈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다르 벤의 영향으로 빛의 파장을 조작할 수 있는 모니카와 캡틴 마블, 카말라가 초능력을 쓸 때마다 서로의 위치가 뒤바뀐다. 우주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카말라의 집으로 캡틴 마블이 들어오고, 카말라는 우주복을 입고 유영하던 모니카와 몸이 바뀌게 된다. 다르 벤이 선한 우주인들이 살고 있는 행성들을 파멸하려고 하자, 셋은 '더 마블스'로 하나가 돼 싸운다.

'더 마블스'의 한 장면.
'더 마블스'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여성 히어로들이 주축이다. 설정도 혼란스러운데, 캐릭터들의 쉴 새 없는 수다까지 더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노, 노, 노, 노", "이건 안될거야.", "아냐! 아이 캔 두 디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이렇게 대화가 가능하다니 놀랍다.

굳이 이렇게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따라야 할까 싶다. 수다, 눈물, 과도한 표현 등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히어로에까지 적용하는 전근대적 발상을 유지한다.

영화 속에서 남성 캐릭터는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와 또 한 사람 얀 왕자다. 얀이 바로 박서준 배우다. 감독이 "코로나19 시기 친구의 권유로 '이태원 클라쓰'를 보고 캐스팅하게 됐다"고 말한 그 한국 배우. 그러나 분량이 짧다. 거의 카메오 수준이다. 액션이 잘 어울릴 배우인데, 캡틴 마블과 함께 춤을 추는 어색한 장면을 넣었다.

얀의 행성은 노래로 소통하는 행성이다. 모든 대사를 뮤지컬처럼 노래한다. 얀만 인간처럼 대화도 할 수 있는 2개 국어(?) 능통자이다.

그런데 이 행성의 시퀀스는 상당히 해학적이다. 긴장의 이완을 위한다고 하기에는 코믹함이 도를 넘는다. 과거 마블의 히어로물에서 보여준 격조 높은 유머들과는 판이하고, 또 유치하다. 아예 작정하고 톤 다운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물은 소녀팬들을 위한 가십으로 다운사이징 한다고 선언한 듯 말이다.

더구나 고양이들까지 현실적 형상 그대로 등장한다. 캡틴 마블을 집사로 둔 고양이 구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신세대의 취향을 의도적으로 적용시킨 것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깜찍하면서도 창조적으로 탄생된 그루트와 달리 구스는 아주 귀여운 고양이 그 자체다. 심지어 고양이들이 우주선을 가득 채우는 장면에서는 뮤지컬 '캣츠'의 히트곡 '메모리(Memory)'가 우주에 메아리친다. 지구를 지키는 방위사령관 닉 퓨리가 고양이를 안고 쩔쩔 맨다.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유머스럽지도 않은 안일한 발상의 설정이다.

'더 마블스'의 한 장면.
'더 마블스'의 한 장면.

'더 마블스'는 서사를 구축하는데 인색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나름 서사들이 있다. 그러나 일일이 공부하고 오라고? 서사가 없으니 캐릭터의 묘사 또한 단선적이고 평면적일 수 밖에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특수촬영을 위한 그린 스크린 앞이라는 것이 역력하다. 그래서 파워가 느껴지지 않는 슈퍼 파워 히어로물이 되고 말았다.

모니카는 엄마가 창설한 S.W.O.R.D.(지각 무기 관측 및 대응국)에서 일하다 빛을 시각화하고 파장을 조작하는 슈퍼 파워를 얻게 된다. 모니카가 위기 상황을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 마블스'는 화려한 시각효과와 음향에만 치중한 끈 떨어진 마블 히어로물이다.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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