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그날 나는 대구 북구 침산동의 어느 아파트 앞길을 걷고 있었고, 그는 퇴근길이었다. 그와 동행인 사내가 그를 밀어제쳤고, 그는 비틀거리면서 인근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P오피스텔 인근 길거리 카페에서 홀로 치즈케이크를 먹고 있던 그를 다시 만났다. 서로 짧은 영어 대화 수준이라 영어로 대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영어가 유창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둘 다 짧은 수준이라 늘 대화에는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이심전심인지 늘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오고 갔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고, 대구 축구 발전을 위해서 대구 축구 주주인 나와 더불어 일정한 금액 이상을 매년 납부하는 대구FC 골드 멤버였다. 테니스를 좋아하고,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지라 비록 회갈색 머리칼의 외국인이지만 나는 첫 대화 때부터 그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 후 나는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는 가족과 함께 무조건 관람했다.
간혹 나는 그의 가족 사항이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매우 난처한 입장을 취하는지라 그의 개인 사정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공산주의 국가인 불가리아 태생이고, 동독에서 성장하여 독일이 통일되면서 독일인이 되었으니 뭔가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를 소개받은 아내는 나보다 더 적극성을 띠었다. 그가 공연하는 날이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잔칫상을 벌이는 것 같았다. 거의 대부분 좌석이 만석이기에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수선을 떨어야 객석의 말석이라도 차지할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maestro) 줄리안 코바체프(1955~2023)가 지휘를 마치고 난간에 서서 손을 흔들면 그야말로 환상의 풍경이었다. 들었던 음향의 향기와 그의 모습은 강렬한 태양빛과 천상이 융합되는 파노라마를 불러일으켜 청중들의 몸과 마음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는 대구시향을 지휘하면서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여 각자의 개성에 맞추어 실력을 연마시키다가 알게 모르게 발전된 연주 실력으로 성장한 개개의 단원들을 한곳으로 묶어서 통합 실력으로 발전시키는 마법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의 스승인 지휘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에게 배운 청중에게 진정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 '흠뻑 느껴라' '끝없이 배워라'란 가르침에서 나온 자신의 무기를 어김없이 발휘한 결과인 것이다.
나는 그와 가까워질수록 그가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다.
적당한 배필이 있었다. 남편과 사별했지만 아름다운 대구의 미술가 한 분이 천상의 배필로 여겨진 나는 그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러나 만난 지 6개월여 만에 그들은 헤어졌고, 나는 지금도 그들이 헤어진 이유를 모른다.
대구시향 9년간의 재직 중 유럽 3개국 투어(2016)는 백미였다. 대구시향의 연주가 베를린 필하모닉, 비엔나 필하모닉,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극찬을 받은 것이다.
잘나가던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에게 닥친 위기는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땐데 그의 포용력과 단원들의 단합으로 팬데믹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9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직 후에도 대구에서 살고자 한 그의 소망은 태창철강(TC)의 문화예술사업 자문역으로 근무함으로써 대구와의 연연이 지속되었으나 지난 12일 지병인 심장병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대구를 진정으로 사랑한 파란 눈의 외국인 코바체프, 그는 비록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지만 하늘나라로 간 이후 파란 눈의 한국인 코바체프가 되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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