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수정이가 대입을 포기했다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 원장.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 원장.

수정이가 대입을 포기했다. 선천성 뇌출혈로 편마비 뇌성마비인 수정이는 "이렇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쟎아!" 라고 당차게 외치는 멋있는 내 환자다. 딱 봐도 편마비지만 남자친구를 사귀고, 용돈 때문에 엄마하고 싸우는, 우리 주변의 흔한 고3학생이다.

수정이는 팔다리는 불편하지만 인지기능이 좋아서 충분히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아 대입준비를 권유했었다. 아니,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손의 경직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올 때마다 수학문제집을 풀어와서 검사하고 우리 병원 직원인 준우가 틀린 문제를 설명해 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일도 있었다. 여느 날처럼 "숙제 잘했어?"라고 건네는 인사에 돌아오는 시무룩한 대답. "숙제하고 있는데 바보가 공부한다고 애들이 놀려서 속상했어요" 그러다 결국 저번 주 진료 때, 대입준비가 부담스러워서 포기하겠다고 했다.

우리 환자들은 매순간 포기하기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강요받으면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열배가 넘는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그 노력도 놀림받거나 그게 되겠어? 어차피 안될건데. 라는 얘기를 매일매일 듣는다. 심지어는 부모에게서도.

나의 또 다른 환자 영규는 못 걷고 말도 잘 못하지만 대구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인지는 좋아서 본인 홈페이지 운영도 했었다. 개원한 병원으로 10년만에 찾아온 영규 부모님은, 영규가 취직을 해도 사기당할 수도 있고 아픈 아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졸업 후 일은 안하고 간병인과 함께 집에서 생활하게 했다고 했다. 문제는 영규는 이미 30대 후반이고 부모님은 70대가 되었다는 거다. 부모님은 고령으로 건강문제가 생겼고 영규는 오랫동안 집안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이제는 정말 독립을 하려 해도 힘든 상황이었다.

재활의학과 의사로 살다보면 한번씩 거대한 벽앞에 서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진료를 하고 치료를 하는 목적은 병원에서 100점을 받는 게 아니라 이 사회의 일원으로 두 발 딛고 살게 하는 거다. 장애인 우영우가 변호사 우영우로 살 수 있었던 건 우영우를 받아준 동료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영우가 포기하지 않고 원서를 계속 냈기 때문이다. 늪에 빠져 힘들어 하는 내 환자들의 손을 내가 잡아줄 순 있어도, 그 늪에서 빠져 나오려면 환자 스스로 본인의 두 발에 힘을 주어야 한다. 장애인인데 뭘 어쩌겠어,라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결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하지만, 과연 될까 하는 두려움속에서도 해보기로 마음먹은 환자가 있다면. 안될거라고, 바보가 공부를 왜 하냐고, 괜히 취직했다가 더 힘들 수도 있다는데요, 라고 불안해 하는 환자를 만난다면. 아니, 나도 그랬어. 나도 면접에서 떨어졌었고 막상 취직했다가도 이직하고 그랬어. 다 그렇게 살아. 라고 얘기해 주자고 말하고 싶다. 의기소침한 내 친구에게 무심한 위로를 건네듯 그렇게 우리 장애인들에게도 격려를 건네달라고. 왜냐면 도전없이는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이 시간이 그들에게 감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도전부터 하게 해보자고, 거대한 벽 앞에서 혼자 외쳐본다.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손수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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