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어 술술' 다문화 아이들 키워내자…외국인 포용력이 지역 경쟁력

한국어 사라진 경주 흥무초 다문화교실…끼리끼리 소통 '배움' 필요 못 느껴
외국인 근로자 유인·포용 다문화교육 패러다임 전환해야
"저출산 시대 열쇠, 국내 노동력 부족 해결…한국사회 동질감 심어줘야"

재학생 다수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비롯해 고려인들로 구성된 경주 흥무초등학교가 눈길을 끌고 있다. 2024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을 맞은 4일 경주 흥무총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 원아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재학생 다수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비롯해 고려인들로 구성된 경주 흥무초등학교가 눈길을 끌고 있다. 2024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을 맞은 4일 경주 흥무총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 원아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하세요)!" 지난 4일 경북 경주 흥무초등학교 입학식. 교실 밖으로 새어나오는 아이들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모든 교실을 둘러봐도 '한국말'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흥무초는 현재 경북에서 외국인 학생이 가장 많은 곳이다. 흥무초가 있는 경주 성건동 일대에는 옛 소련 지역 출신의 고려인(외국인)이 몰리면서 다문화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6년 25명에 불과했던 다문화학생이 올해 258명까지 늘어났다. 학생 10명 중 7명이 다문화학생이다.

문제는 한국어 소통이다. 아이들은 익숙한 러시아어로만 온종일 얘기한다. 정상적인 학교 수업까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중학교 진학 이후에도 한국어를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지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이들 자녀를 위한 다문화교육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화두로 떠올랐다. 지역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경북 지자체의 노동력 부족 현상과 학령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문화교육 혁신을 통한 외국인 근로자 유입·포용 정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나고 자란 다문화학생과 달리 타국에서 이주한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은 우리말과 언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맞춤형 한국어 교육이 더욱 중요해졌다.

13일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경북 지역 다문화 초·중·고등학생은 지난 2011년 2천34명에서 지난해 기준 1만2천240명으로 증가했다. 다문화학생 비율은 10년 전 전체의 1.07%에서 지난해 기준 4.89%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 경북에서 가장 많은 다문화학생이 몰려 있는 곳은 바로 경주(1천800명)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이 폭증한 영향이다. 특히 경주 성건동 일대는 고려인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이 마을까지 형성할 정도가 됐다.

문제는 한국어 교육이다. 외국인 가정 학생끼리 모여 있다 보니 한국어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흥무초는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따라올 수 있도록 일반 교실을 분할해 학년별 한국어 교육실을 별도로 운영 중이지만, 갈수록 외국인 가정 학생이 늘어나면서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지역 교육계에서는 외국인 가정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예비 학교 또는 거점 학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2, 제3의 흥무초 사례가 언제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기초 학습을 '한국어 예비학교'에서 담당하고, 교과 수업 등을 따라가는 데 필요한 한국어 수업은 학교에서 담당하는 방식이다. 경주 성건동 등 외국인 다문화 자녀들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설치·운영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정지윤 명지대학교 교수(이민다문화학 전공 주임교수)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 한국은 다문화사회에 들어섰다. 그동안의 다문화 교육은 이주자의 증가에만 시선을 돌린 나머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적 대응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교육 기관에서도 다문화사회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다문화 가정이 국내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취업처와 일자리도 개발해야 한다"며 "저출산 시대에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이를 해결할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고 이민자들이 기존 한국사회 구성원들과 동질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고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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