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솔길이 신작로 됐다"…암 투병 중에도 매일 산길 닦는 봉사에 시민들 ‘감동’

직장암 투병 중인 남순신(74) 씨, 3개월 동안 산길 넓히기 나서
남씨 "환자들 다니는 길인데 폭 좁고 돌도 많아, 자연스레 작업 시작"
"길이 훤해졌다", "천사같은 분"… 시민들 칭찬 목소리 이어져

지난 27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서리지수변생태공원 산책로 인근 산길에서 직장암으로 투병 중인 남순신(74) 씨가 땅을 다듬는 봉사를 하고 있다. 윤수진 기자
지난 27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서리지수변생태공원 산책로 인근 산길에서 직장암으로 투병 중인 남순신(74) 씨가 땅을 다듬는 봉사를 하고 있다. 윤수진 기자

암 투병 중에도 등산객들이 편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매일 길을 닦는 70대 남성의 사연이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북구 동호동의 서리지수변생태공원. 공원 산책로 입구에서 데크길을 따라 5분쯤 걸어 들어가자, 오른쪽으로 샛길처럼 난 산길이 보였다. 인근에서 산책 나온 주민들이 수시로 지나다니고, 일부는 맨발로 걷기도 하는 길이었다.

한창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괭이질에 열중하는 한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남순신(74) 씨였다. 그는 매일 오후에 이곳에 나와 병원에서 서리지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석 달 전부터 작업을 시작한 남씨는 지금까지 산길 약 1㎞ 구간의 폭을 넓히고, 땅에 박힌 돌을 파냈다. 맨발로 다니기 어려운 나무 길 위엔 흙을 덮기도 했다.

남씨는 요양병원 환자들이 맨발로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병원 생활을 시작한 후 매일 이 길을 지나면서 운동을 했는데, 폭도 좁고 돌도 많았다"며 "여기로 다니는 사람 중 암 환자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손이 갔다"고 말했다.

몇 달간 이어진 봉사였기에, 이 산길을 지나다니는 사람 중엔 남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날 길을 지나던 한 요양병원 환자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니던 오솔길이었는데, 이젠 완전히 신작로가 됐다"며 "매일 고생해 주는 덕분에 길이 훤해졌다"며 남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매일 서리지에서 운동한다는 북구 주민 주재호(84) 씨도 "등산하는 시민들을 생각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홀로 일한다는 게 감동이다. 천사 같은 분"이라며 "몸도 아프다고 들었는데, 보통 봉사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씨는 '수고했다'는 주위의 격려가 감사하다면서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 삼아 하는 것이니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그는 "금방 낫는 병도 아니라고 해서, 운동할 겸 병을 이겨보려고 하는 것도 있다"며 "병원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다 몸이 훨씬 좋아졌다. 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산길 정비는 약 100m 구간을 남겨두고 있지만, 남씨는 매일 나와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씨는 "비가 온 다음 날엔 다듬어 놓은 길이 다시 패이더라. 아무래도 따로 물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구상 중"이라며 "작업이 다 끝나면 저도 맨발로 이 길을 걸어 다닐 거다. 그 생각을 하면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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