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일기〉
유배라는 배가 있었습니다
한번 떠나면 다신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끊으라 했습니다
바다를 끊으라 했습니다
그래요, 세상을 끊으란 말이겠지요
늙은 초옥에서 죽을 끓입니다
후박나무 이파리 뚝뚝 끊어져도
남해는 얼지 않았습니다
조금에서 사리로 물때가 바뀌면
가슴 절벽에 거센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문고리가 다닥다닥 이를 갈았습니다
소맷부리 눈물 훔치면 부엉새 멀리 울었습니다
위리안치라는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온몸이 가시투성이었습니다
절망을 뜯어먹고 사는 섬이었지요
쪽동백에 부서지는 쪽노을 편으로
강마른 심경 내어다 걸어봅니다만
반 식경도 못 가 비틀대다 주저앉았습니다
뻐꾹새가 띄엄띄엄 허공에 칼집을 냅니다
나를 부르는 홀어머니 목소리 꿈같이 멉니다
수평선 서쪽으로 아홉 구름 꿈으로 몰려가네요
눈 어두운 초옥에서 붓을 듭니다
장마가 길겠습니다
쓰던 이야기도 마저 이어가야겠습니다
흙길이 눈자위에 퉁퉁 부어오르면
못 본 아버지 얼굴도 떠오르겠지요
은빛 멸치 떼 들썩거리는 여기
남해하고도 노도 앞바다에 말입니다

<시작 노트>
파도가 울었다. 도선 갑판으로 비가 들이쳤다. 불타는 쪽동백을 비벼 끄고 있었다. 비가悲歌. 후박나무 이파리를 후둑후둑 내리치고 있었다. 머흘머흘 바람이 섬으로 흘러들었다. 노도도 젖고 서포도 젖고 나도 젖었다. 기댈 곳은 가늘게 몸을 세운 저 빗줄기뿐. 유배라는 배가 있었다. 비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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