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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93>삶의 유한함에 대한 구십 화가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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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장우성(1912~2005),
장우성(1912~2005), '적광(寂光)', 2001년(90세), 종이에 먹, 34×68.5㎝,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월전(月田) 장우성이 자신의 심경을 시서화로 드러낸 작품이다. 제목 '적광(寂光)'은 고요하고 빛나는 마음, 곧 깨달음을 이룬 상태를 뜻하는 불교 용어다. 사찰에 가면 적광전, 적광보전, 대적광전 등이 있어서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의 화신(化身)이 바로 현세에 등장한 부처인 석가모니불이다.

1971년 가야산 해인사 대적광전을 보수할 때 들보에서 추사 김정희 글씨인 '중건상량문'(1818년)이 발견됐다. 아버지 김노경이 경상도관찰사로 이 일에 관여해 당시 33세의 김정희가 짓고 썼다. 김정희의 30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김노경, 김정희를 비롯해 불교와 가까운 유학자가 많았다.

'적광'의 주제는 유한한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이다. 언젠가 닥친다는 건 누구나 안다. 구십의 나이에 이르면 "고요함 속에서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될까? 장우성은 벼루의 먹을 적신 붓으로 언덕 위까지 차지하고 올라간 무덤의 봉분들을 쓱쓱 그었고 잡초 몇 줄기도 그었다. 붓질이 몇 번인지 다 셀 수 있을 듯 간소하다. 붓을 눕혀 먹색을 아무렇게나 중첩한 어두운 하늘엔 그믐달이 걸렸다. 월전의 월(月)이 잔월(殘月)의 빛인 흑백이 전부인 적막함이다.

이곳은 죽음의 대명사인 북망산이다. 나이 구십의 문인화가가 죽음이 멀지 않다고 느끼며 붓을 든다면 이런 그림, 이런 시일 것 같은 작품이다.

북망산 언덕머리 삭풍은 차갑고

무성한 가시덤불 남은 달이 밝네

무덤 위를 달리는 도깨비불 번쩍번쩍 빛나고

멀리 나무에선 부엉이 처량하게 운다

적막한 외로운 넋 묵묵히 말이 없으니

사바세계의 운명이란 한바탕 꿈이로다

가소롭구나 인생이 결국은 환(幻)으로 돌아가는데

달팽이 뿔 위에서 권세와 이익을 그리도 다투는구나

신사년 봄 노월(老月, 늙은 월전)이 나이 구십에

시는 더욱 북망산 언덕에 가까이 왔다고 느끼는 심정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 중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바니타스 정물화'가 있다. 해골과 뼈, 녹아 없어지는 중인 촛불, 썩어가는 과일 등을 그린다. 동양에는 이런 그림이 없었고 대신 신선도를 그려 불로장수를 염원하며 죽음을 외면했다.

인장은 '장씨서화(張氏書畵)', '월전장수(月田長壽)'다. 그런데 '장수' 위에 먹으로 점을 찍어 가렸다. 이제껏 써오던 한 벌의 인장을 찍어놓고 보니 이 나이에 장수를 바라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여긴 것이다. '적광'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드문 작품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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