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대통령 임기 3년? 카이사르는 왜 클레오파트라 곁에서 암살됐는가?

카이사르 동상. 런던 화이트 타워 뒤편 지하철 타워 힐 역 앞 로마 성벽에 설치돼 있다. 카이사르는 B.C.55년과 B.C.54년 두 차례 영국을 침공했다.
카이사르 동상. 런던 화이트 타워 뒤편 지하철 타워 힐 역 앞 로마 성벽에 설치돼 있다. 카이사르는 B.C.55년과 B.C.54년 두 차례 영국을 침공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 힘 한동훈 전 대표, 김문수 후보는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5년 임기를 2년 줄여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 일정을 맞추자는 취지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반대한다. 대통령 임기 3년, 짧은 것일까? 고대 로마 공화정의 공직자 임기를 타산지석으로 들춰본다.

◆런던의 카이사르 동상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구가했던 영국의 수도 런던 템즈 강 북쪽의 역사적 명소인 화이트 타워(White Tower)로 가보자. 1066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프랑스 이름 기욤, 바이킹 출신으로 현대 영국 왕실의 조상)이 영국을 정복하고 세운 요새다. 런던 지하철 타워 힐(Tower Hill) 역에 내려 화이트 타워 방향으로 나오면 로마 성벽이 우뚝 솟았다. 그 성벽 앞에 카이사르 동상이 반겨준다. 런던에 웬 카이사르 동상?

갈리아(현재 프랑스) 총독이던 카이사르가 라틴어로 직접 쓴 『갈리아 전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를 펼쳐보자. 카이사르는 B.C.55년, B.C.54년 2번에 걸쳐 영국에 상륙했다. 카이사르가 그때 런던까지 진출한 것일까? 『갈리아 전기』를 보면 런던 동남부 켄트 지방에만 머물다 돌아갔다. 영국을 식민 속주로 삼고 런던(Londinium)을 건설한 인물은 A.D.43년 로마 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다. 로마 성벽 앞 카이사르는 영국 땅 첫 상륙을 상징할 뿐이다.

카이사르의 승리.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 만테냐가 1485년~1506년 상 그린 9점의 연작 시리즈 가운데 나팔수 행진. 런던 햄프턴 코트 소장, 2024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시.
카이사르의 승리.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 만테냐가 1485년~1506년 상 그린 9점의 연작 시리즈 가운데 나팔수 행진. 런던 햄프턴 코트 소장, 2024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시.

◆카이사르의 승리

2024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특별 전시회가 열렸다. 철군한 카이사르의 승리를 묘사한 「카이사르의 승리」다. 르네상스 회화 초기 선원근법의 대가 안드레 만테냐가 1485년부터 1506년 죽을 때까지 그린 9점의 연작 시리즈다. 달걀 템페라(egg tempera)와 접착제 혼합 기법으로 가로 2.66m × 세로 2.78m 크기의 대형 판넬 9개에 그렸다. 1번 '나팔수들'부터 9번 '카이사르의 개선'까지다. 헨리 8세의 연인에서 왕비, 이어 사형당한 앤 불린(엘리자베스 1세 생모)이 거주하던 햄프턴 코트 궁전 소장 작품을 빌려와 특별 전시한 것이다.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과 쿠리아 율리아. 쿠리아 율리아는 B.C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되기 직전 건축을 명령한 의회 건물. 현재 건물은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 시절 복원한 것이다.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과 쿠리아 율리아. 쿠리아 율리아는 B.C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되기 직전 건축을 명령한 의회 건물. 현재 건물은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 시절 복원한 것이다.

◆암살돼 신이 된 인물, 카이사르 신전

카이사르가 실제 개선 행진을 펼쳤던 로마 포럼(Foro Romano)으로 가보자. 서쪽 끝 카피톨리니 언덕 아래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재위 193년~211년) 개선문(203년 건립)이 1800년 넘게 오롯하다. 그 북쪽에 쿠리아 율리아(Curia Julia, 의회)가 자리한다. 카이사르가 B.C.44년 착공하고 B.C.29년 완공됐다.

카이사르 신전. 카이사르는 암살된 뒤, 신으로 선포됐다. 그의 후계가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포럼에 설치한 신전이다.
카이사르 신전. 카이사르는 암살된 뒤, 신으로 선포됐다. 그의 후계가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포럼에 설치한 신전이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무솔리니 정부가 로마제국의 영광 재현 취지로 복원한 거니 짝퉁이다. 여기서 동쪽 100여m 거리에 카이사르 신전이 자리한다. 카이사르가 B.C.44년 3월 암살된 뒤,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B.C.42년 건축했다. 죽어 신의 반열에 오른 카이사르의 신전 앞에서 암살 당시 정세를 떠올리니 클레오파트라가 걸려 나온다.

클레오파트라 흉상. B.C.60년~B.C.30년 제작.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박물관
클레오파트라 흉상. B.C.60년~B.C.30년 제작.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박물관

◆연인 클레오파트라 곁에 두고 살해된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미인이었을까? 클레오파트라(7세)는 이집트 여왕이지만, 순수 그리스(마케도니아) 혈통이다.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으로 이집트 총독으로 부임했다가 왕조를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8대손이다.

그녀를 묘사한 조각이나 동전을 필자는 박물관 4곳에서 확인했다. 그중 한곳, 북아메리카 5대호 가운데 온타리오호 연안의 그림 같은 도시 토론토로 가보자. 온타리오 박물관 이집트 전시실에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이 맞아준다. B.C.60년~B.C.30년 사이 만들어졌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실물을 반영하지는 않았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한다. 조각을 재활용하던 당시 관습 때문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탐방하며 확인한 클레오파트라 조각도 마찬가지다. 실물을 충실하게 반영한 주화(鑄貨)에서 실물을 유추해보는 게 사실에 가깝다.

클레오파트라 청동 주화. B.C.51년~B.C.31년 제작.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
클레오파트라 청동 주화. B.C.51년~B.C.31년 제작.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

◆하버드대학교 미술관의 클레오파트라 주화

자타가 공인하는 명불허전의 명문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 중인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으로 가보자. 클레오파트라 동전에 얼굴이 또렷하게 남았다. 하지만, 미술관 측이 B.C.51년~B.C.31년 사이 제작됐다고 설명하는 청동 주화는 너무 작아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를 논하기 어렵다.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주화 역시 마찬가지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는 여전히 베일 속에 남는다.

52살의 카이사르는 B.C.48년 이집트에 머물며 22살의 클레오파트라와 불같은 사랑을 나눴다. 카이사르가 그녀의 외모는 물론 지성미에 반했다고 2세기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Vitae Parallelae, Parallel Lives)』에서 묘사한다. B.C.47년 아들 카이사리온을 출산한 클레오파트라는 B.C44년 1월 아들을 데리고 로마로 갔다.

아들을 상속자로 인정하라는 클레오파트라의 요구에 카이사르의 답변은? 2세기 수에토니우스는 『로마 황제전(De Vita Caesarum, The Lives of the Caesars)』에서 카이사르가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적는다. 그렇게 두달여 클레오파트라와 친자 확인 실랑이를 벌이던 카이사르가 B.C.44년 3월 15일 암살된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B.C.44년 3월 카이사르 암살의 주동자. 로마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B.C.44년 3월 카이사르 암살의 주동자. 로마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

◆카이사르는 왜 암살됐을까?

로마의 팔라조 마시모 박물관에 곱상한 외모의 꽃미남 스타일,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Marcus Junius Brutus) 조각을 찾아간다. 카이사르의 연인 세르빌리아의 아들로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에 참여한 부하였다. 카이사르의 심임도 두터웠다. 플루타르코스는 브루투스가 카시아스를 비롯한 60명의 동료 의원과 카이사르를 공격했다고 『영웅전』에 기록한다. 다른 기록을 봐도 최소 30명의 의원이 무기를 들고 카이사르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Et tu, Brute? Then fall, Caesar(브루투스, 너마저도? 그렇다면 카이사르여, 쓰러지라(내가 쓰러져 죽겠다)". 셰익스피어가 1599년경 발표한 희곡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의 3막 1장에 나오는 카이사르의 대사다. 셰익스피어의 이 문구 때문에 브루투스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그럴까?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유를 로마의 공화 정치에서 살펴보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B.C.509년 로마에서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도입한 인물. 카이사르 암살범 브루투스의 조상이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B.C.509년 로마에서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도입한 인물. 카이사르 암살범 브루투스의 조상이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로마시대 공직은 1년, 연임 불가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가면 카이사르 암살의 주역 브루투스의 조상,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의 조각이 맞아준다. 그는 B.C.509년 로마를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꾼 인물이다. 로마 공화정에서 대통령에 해당하는 집정관(Consul), 법무관(사법, Praetor), 건축관(Aedile, 혹은 감찰관), 재무관(Quaestor, 경제), 호민관(Tribunus Plebis, 평민 보호)의 모든 공직은 국민 직선제였다.

놀라운 점은 공직 임기가 단 1년이라는 점. 연임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독재 방지. 이런 민주 공화 시스템으로 로마는 B.C.1세기까지 에트루리아, 카르타고, 그리스는 물론, 북방의 갈리아 등을 제압하고 지중해 제국을 일궜다.

◆공화정을 무너트리고 왕정을 시도하다 암살된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깨고 왕정을 시도했다. 카이사르의 왕정 추진 과정을 보면 ⓵B.C 49년 쿠데타로 집정관, ②B.C 47년 5년 독재관, ③B.C 46년 10년 독재관에 이어 ④B.C 44년 1월 종신독재관, 즉 사실상 왕(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때 클레오파트라가 아들을 데리고 후계자 자리를 얻기 위해 로마로 온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아버지 브루투스의 후예, 브루투스는 원로원 의원 60명과 공화정을 깨트린 카이사르를 암살했다. 사적 인연을 끊고,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서다. 선출직 공직자가 임기 1년만 수행하면서도 대제국을 일군 로마, 독재자를 처단한 로마 역사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교훈을 얻을까? 대통령 임기 3년 단축과 5년 유지를 놓고...

글·사진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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