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시절 아주대에서 대학생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대법관 100명 증원' 법안을 철회한 데 대해 "내가 지시한 적 없다"면서 "지금은 사법 관련 논란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서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슬며시 공약을 철회했다. 3권분립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받자 꼬리를 슬쩍 내리고 없던 것으로 했지만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고 당선시 추진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없었다.
군의 문민통제 방안과 관련해 "이제는 국방장관도 민간인으로 보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다만 차관 이하는 군령 담당과 군정 담당을 나눠서, 군령 담당은 현역이 맡고 군정 담당은 (민간인과 군인을) 중간쯤 섞을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미국이나 서구의 경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상무정신을 고양하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처우와 복지가 남다르다. 그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게 그들이 수행하는 임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알아주는 것이다. 그게 공동체를 지키는 상무정신이다.
프랑스의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1835년 미국을 시찰하고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와 장단점에 대하여 썼다. 그 책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나라는 상비군을 유지하는데 군비의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평소에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나 적이 침공하거나 유사시에 구성원들이 과감히 전시체제로 전환하여 힘을 집중해 적을 격퇴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방부 군정과 군령체계의 내부혼돈
대한민국 국방부의 군령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합참의 전쟁기획과를 방위기획과, 전역기획과로, 결국 국방부 방위정책과로 변경하여 군령 기능을 군정 기능으로 전락시킨 사례는 군령권 침해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나 명칭 변경이 아니라, 전쟁 수행과 작전 지휘라는 군의 본질적 역할을 민간 정책부서로 이전하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러한 경계 파괴는 군의 전문성과 사기를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유사시 국가안보를 위협할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문민통제는 '균형', 문민지배는 '오만'
문민통제(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이는 군의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민간이 군의 고유영역에 간섭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문민통제의 핵심은 정치 지도자가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되, 그 실행과 운용의 세부는 군 전문가의 몫이라는 균형에 있다. 사무엘 헌팅턴의 명저 『군인과 국가』는 이러한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치권의 무지와 오만이 어떻게 군령의 본질을 훼손하는지를 경고한다.
최근 군과 민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은 사무엘 헌팅턴의 경고를 무색하게 한다. 대법관 증원 철회 논란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책임회피와 마찬가지로, 국방장관 민간인 보임론과 군령-군정의 경계 모호화는 국가안보를 정치적 이해관계의 도구로 전락시킨다. 정치적 논리가 군사적 판단을 덮는 순간, 군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을 도박판에 올리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속 3위일체와 군령의 본질
전쟁철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의 본질을 국민,군,정부라는 3대 행위자와 폭력성,우연성 및 개연성,정치성이라는 3대 속성으로 설명했다. 이중 우연성 및 개연성은 군령과 직결된다. 군은 전쟁의 불확실성과 우연을 극복하고 승리를 추구하는 존재로서, 군령(Command Authority)은 군의 전문성을 전제로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군령의 본질을 "자유로운 정신활동"으로 표현하며, 이는 정치권의 간섭이 없는 군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군사적 판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군령의 자유로운 정신활동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방위기획과 명칭 변경과 국방부 방위정책과의 군령 흡수는 군령권의 침해이며, 이는 클라우제비츠가 경고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간섭'과 다를 바 없다. 전쟁은 군인의 고유 영역이며, 군령은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다.이를 민간이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안보 붕괴의 서곡이다.

◆군령과 군정의 경계, 반드시 지켜야
군령은 군사작전과 전쟁수행의 영역이며, 군정은 정책과 행정의 영역이다. 이 경계가 무너질 경우, 군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전장의 논리가 아닌 책상 위의 논리가 장병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군의 대응은 "확전을 방지하되 철저히 응징하라"는 모순된 지침에 발이 묶였다. 이는 군령에 대한 정치권의 무지와 오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은 계산된 응징이 아니라, 작전적 판단과 결단으로 승부하는 영역이다.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은 상무정신을 존중하고 군의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문민통제를 유지하되, 군령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인들의 처우와 복지를 강화하고, 그들의 임무 중요성을 인식시켜 자긍심을 높인다. 이는 젊은이들이 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국방의 기강을 세우는 기본이다.
◆군령은 군의 책무, 군정은 민간의 몫
한국군의 군령과 군정은 다시 그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군령은 군의 전문성과 자유로운 정신활동에 맡기고, 군정은 민간이 정책과 예산,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둔 지금, 군령에 대한 문민의 간섭은 한국군의 독자적 전쟁수행 능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정치권은 헌팅턴의 『군인과 국가』를 정독하고, 국민과 군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이해해야 한다. 전쟁은 단순한 책상 위 논리가 아니라 피로 물든 전장의 논리이며, 군령은 결코 정치적 계산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국방부는 군정과 군령의 선을 다시 그어, 군령을 군에 맡기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것이 군을 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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