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민을 넉다운시킨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라는 괴기한 한 공무원의 발언이 있었다. 이 발언은 한국 정치사회가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주는 하나의 바로미터처럼 인식된 적이 있었다. 이우천 연출의 <양은 양순하다>(작, 오태영, 극단 대학로극장, 선돌극장)는 우화적 알레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부조리적으로 풍자해 온 오태영 작가의 신작으로, 극단 대학로극장 이우천 연출의 정기공연이다. 이번 작품도 전작들에서 드러난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작가의 우화적 풍자성을 칼날처럼 녹여낸 작품이다. 마치 동서양의 우화 스토리를 우회적으로 병치해 국민을 길들이는 전체주의적 정치의 알레고리로 풀어낸 점이 눈길을 끌었다. 〈양은 양순하다〉는 양치기와 양의 이야기를 빌려 권력이 시민을 어떻게 길들이고 통제하며, 또 다른 폭력을 낳는지를 풍자하는 정치 알레고리다. 작품은 처음에는 동화처럼 시작한다. 그러나 장면이 쌓일수록 웃음은 서늘한 풍자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목이 잘린 양의 이미지가 기괴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하다.
◇ 양치기 부부와 양, 권력의 알레고리
인물들과 캐릭터들은 양치기(김예림 분), 부인(문영지 분) 외에 요원, 두목, 애꾸, 검은 양과 하얀 양이 등장하는데, 사회적 구조를 상징한다. 양치기 부부는 시민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얼굴이다. 부인은 문화와 교양, 복지정책으로 양을 길들이려 하고, 양치기는 폭력과 공포, 저항하면 목을 '댕겅'하는 처벌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검은 양은 '불온한 존재'이자 저항의 상징이며, 하얀 양은 시민을 대변한다. 여기에 식품의약품안전국 요원(오혜진 분)은 국가 시스템과 통치 기술을 풍자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산적들도 기존 권력을 무너뜨린 또 다른 폭력 권력을 은유하는 캐릭터들이다. 작품 속 모든 인물은 선과 악의 대립이라기보다 권력과 복종, 저항과 통제라는 정치적 구조를 구성하는 상징적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배경은 한 마을에서 양을 길러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들어 팔며 살아가는, 황제와 황후가 되고 싶은 권력을 욕망하는 양치기 부부의 이야기다. 알프스의 하이디를 연상시킬 정도의 분위기고, 극 후반에 등장하는 산적과 양치기 부부의 전체주의적 독재와 폭력적 군주의 이야기는 고전 우화를 리믹스해 서사로 방목한 듯한 스토리다. 다른 점은 이번 <양은 양순하다>가 아동극처럼 지극히 동화적인 배경과 극 중 인물들을 캐릭터화했다는 점이다. 무대는 유치해질 수 있는 분위기인데도 묘하게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마치 의도된 것처럼 성인을 위한 어린이 동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랄까. 연출은 양치기 부부의 이야기에 동화적 우화성을 살려 뮤지컬적인 분위기까지 극 중 장면으로 연결하고, 의인화된 양들을 동화적 풍경으로 살려냈는데 이 조합이 묘하다. 무대는 의자와 탁자, 양치기 부부가 살아가는 목장의 창고 같은 분위기인데, 그 뒷면에는 스크린을 띄워 단출한 장면들과 우화적 삽화를 알레고리적 이미지로 삽입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양치기 부부가 기르는 몇 마리의 양들은 검은 양과 흰 양으로 나뉘어 목장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이때부터 오태영 작가의 우화는 정치적 알레고리로 전환된다. 누가 봐도 양은 시민이고, 양치기 부부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욕망하는 권력자의 얼굴이며, 목장은 국가를 상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양 한 마리가 목장 울타리를 넘어 농장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으면서 부부의 통치 방식도 달라진다. "양들을 가만두면 안 된다. 온순한 양으로 길들여야 한다."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문화정책이다. 폭력보다 문화와 교양으로 양들을 순화시키려 한다. 부인의 대사다. "내일 장에 가서 이번엔 고흐의 그림을 사 올게요. 우리 새로운 문화정책을 써봐요." 부부는 샤갈의 그림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고흐의 그림으로 문화정책을 바꿔 양들을 유인하는가 하면, 역사 교육 대신 '조삼모사'를 가르치며 국민(양)을 현혹하고 길들이기 시작한다. '조삼모사' 극 중 장면은 작품에서 직접적인 정치 풍자다.
도토리의 개수는 같지만, 표현만 바꾸면 만족하는 양들의 모습은 숫자보다 프레임에 흔들리는 대중심리를 비튼다. 역사 교육은 위험하다는 양치기의 대사를 통해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집단적 시민의 기억임을 역설한다. "역사는 안 된다"는 한마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억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한다. 양들이 점차 온순해지고 번식이 늘어나자 부부의 권력 욕망도 함께 커진다. 더 많은 양은 많은 우유와 치즈를 생산하고, 천문학적인 부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부부는 양들의 번식을 장려하는 각종 유인 정책을 펼치고, 밤에는 자유시간까지 허용한다. 이 장면은 저출산 문제를 둘러싼 국가의 출산 장려 정책을 풍자적으로 비튼 대목으로 읽힌다. 출산과 자유마저 통치의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논리 속에서 제도화되는 모습은 권력이 시민의 삶을 돌보기보다 국가 운영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낸다. 이러한 설정은 정책의 이면에 숨은 권력의 욕망을 냉소적으로 응시하는 오태영 작가 특유의 풍자 감각을 보여준다.
◇ 독재의 몰락, 저항의 역설
길들여진 양들만으로는 서사의 극적 긴장은 미온할 수 있다. 이때부터 작품은 양들의 저항과 반란을 한국 정치사의 시간과 겹쳐 놓는다. 시민의 저항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 극은 10·26을 연상시키는 동화적 패러디와 정치적 풍자를 이어간다. 양치기 부부는 다른 양들이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양의 목을 베는 '댕겅' 공포정치를 일상화하고, 이를 통해 온순한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그럼에도 끝내 길들지 않는 검은 양은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독이 든 젖을 만들어낸다. 양치기가 독젖을 마시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해독제로 살아나면서 극은 독극물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정치풍자극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식품의약품안전국 요원은 사건의 실체보다 관료사회를 풍자하는 인물이다. 사건의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모습은 과거 한국 정치사의 각종 조작 사건과 북풍공작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이어지는 장면은 독재와 폭력의 역사로 양들을 순화시킨 정권은 결국 그 권력이 몰락한다는 메시지일까. 산적 두 명이 등장하고, 부부는 이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검은 양 우유의 독을 떠올려 검은 양을 잡아 와 산적에게 먹였지만 멀쩡히 살아난다. 그럼 검은 양의 독은? 마지막 장면이 그 해답을 준다. 동화적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거대한 흰 양이 목이 잘려 나간 채 등장한다. 무대를 뒤뚱거리며 등장하는 흰 양은 목이 베어져 <양은 양순하다>는 괴기하고 섬뜩한 풍자로 전환된다. 결국 온순한 양으로 길들여질 수 없는 국민,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권력, 그동안 역사적으로 오류화된 시민들의 죽음의 진실은 결국 민주 시민들의 저항의 독으로 독재와 폭력, 부패와 역사적 모순을 무너뜨리며, '양은 온순해질 수 없다'는 역설의 우화를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 이우천 연출의 <양은 양순하다>이다.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대학로극장 신입단원들과 여자 배우들이 젠더프리로 극중 역할을 맡았고, 거칠면서도 작가의 우화적 알레고리를 이우천은 정직하게 무대에 배치하려 했다. 장점은 극단 대학로극장이 여러 환경 속에서도 꾸준하게 정기공연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 대학로극장은 쌍문동에 연습실을 만들어 소극장으로 개조해 8월 6일부터 9일까지 <양은 양순하다>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우천 연출은 "쌍문동에 저희 극단 연습실이 있는데 극장으로 개조했어요. 진짜 단원들이 뚝딱거리면서 만들었습니다, 세련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장비도 열악하고, 마치 80년대 소극장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나 저와 저희 극단에는 명동예술극장보다 소중하고 애정어린 공간입니다. 많이들 공연을 보러 오세요."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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