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역 1번 출구로 나와 우측 골목을 따라 500여 미터 들어서면 흑색 벽돌에 좁은 돌출형 직사각형 창틀 구조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벽이 보였다.'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간 박종철 열사(1987)의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문의 흔적과 핏물로 얼룩진 빨간 욕조가 그대로 있다. 들어가면 죽음이 되어 빠져나올 수 없었던 미궁의 건축물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건축가 김수근은 열사의 죽음 7개월 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건축한 고문방 욕조 배수구는 여전히 고통의 심장으로 혈전(血栓)되어 격동의 현대사를 상징하고 있다.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욕조와 벽, 바닥의 검붉은 타일들은 망자들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색이 윤택하지 않으니 반사된 내 몸도 검게 보였다.'심문은 예술'이라고 말한 이근안은 한때 목사가 되었다. 70~80년대에는 롯데제과 공장이 건물 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 누구도 미궁의 건물을 알지 못했다. 당시 준공자는 내무부 장관이었던 김치열이 책임자로 기록되어 있다. 1976년 완공된 건물은 5층으로 설계되었고, 1980년대 초반 7층으로 증축되었다. 2025년 용산구는 뉴타운 도시로 변해 있었다.
골목은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 70년대 후반 간첩을 만들고 간첩이 되어 나오던 미궁의 건물은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남영동 대공분실 직원(요원)들이 수 많은 피해자들의 눈을 가리고 승용차 뒷좌석에 태워 드나들던 철문은 한쪽 면이 움푹 파헤쳐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철문을 열고 닫았으면 두께 20센티쯤 되어 보이는 철덩어리가 휘어졌을까 싶었다. 옆에는 관리소로 통하는 작은 철문이 있는데, 신분 확인 위해 한쪽 눈 정도만 식별할 수 있는 크기였다.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곳. 고문관들과 경찰은 공장 사장, 부장, 대리, 대표의 명함을 들고 다니며 국가에 충성을 다하며 간첩을 만들던 남영동 대공분실 옆을 달리는 1호선 철로는 1974년 개통되어 인천과 청량리를 향해 소리를 내고 있었다. 2023년 초연된 〈미궁의 설계자〉(작 김민정, 연출 안경모)는 한국연극베스트 등 작품성을 평가받은 연극집단 반의 작품으로 장소특정 이동형 연극(site-specific promenade theatre)으로 재구성됐다.

◆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 ― 남영동 대공분실, 죽음 설계도
장소특정 이동형 연극이라는 장르 특성에 따라, 공연은 테니스코트로 쓰이던 민주광장에서 시작되어 대공분실 후문, 나선형 계단, 2층 설계실, 3층 특수조사실, 5층 고문실로 이어졌고, 관객은 공간을 따라 고문과 국가폭력, 기억과 망각의 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70~80년대 대공 직원들이 고문 후 몸을 풀던 테니스코트장은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권력과 폭력은 같은 공간에서 공존했다. 우측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그 앞은 민주주의운동기록관 건물이 보였고, 뒷편에는 흑색 벽돌로 된 대공분실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벽돌 외벽, 좁은 돌출형 창틀, 나선형 계단, 욕조가 놓인 조사실, 철제 복도 공간은 고통의 축적이자 권력의 장치로 다가왔다.
배우들은 이 공간에서 미궁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혹은 그 조력자 양신호)의 역사의 내면을 따라가며, 박종철 열사와 고문 피해자들의 고통의 흔적을 되살렸다. 미궁의 건축가가 남긴 욕조 배수구는 피로 막혀 있었고, 검붉은 타일의 진실을 시대는 닦아낼 수 없었다. 공간 이동은 건물 사이에서 시작된다. 구성은 전작 서사와 유사하다. 양 실장의 어린 시절 장면(아이는 전작에서 양신호 자아의 분신이자 김수근의 어린 시절로 동일화된다)과 그가 설계한 욕조에서 죽어가는 장면은 이동 공간에서 폭력의 역사가 현재적으로 감각될 수 있도록 사실감을 높이는 구성을 보였다. 그날의 잔혹한 역사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장소특정 이동형 연극은 1975년의 '설계', 1986년의 '고문과 죽음', 그리고 2025년의 '기억과 응시'가 병렬되어 다층적 구조로 공간을 이동하며 전개된다. 다큐멘터리 감독 권나은(이가을 분)의 현재 시점과, 대학생 송경수(송현섭 분)의 고문당하던 과거 시간, 고문 설계에 조력한 조수 양신호(이종무 분)의 과거 내면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교차 편집되듯 구성되었다. 안경모 연출은 실제 공간의 구조를 활용해 '나선형 계단'의 원형미를 미로적 구조로 전환시켰다. 배우들은 5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죽음의 공간으로 끌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감각적으로 체현했다. 영상과 사운드는 사건의 기억을 공간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했다. 라이트로만 밝히는 조사실, 욕조로 끌려가는 순간 울려 퍼지는 유행가, 기괴한 철문 소리, 80년대 카세트테이프 속 증언의 소리는 피부로 스며들었다. 크레타의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한 미궁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두고 죽이기 위한 구조가 되었다. 설계자 김수근은 철저히 대사로만 호출된다. 무대 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미궁의 그림자는 모든 공간과 구조 위에 덮여 있다.

◆ 진실을 감각하게 하는 '민주화운동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이 완공되기 이전, 1975년. 김치열과 김수근의 설계를 보조했던 극 중 인물 양신호(이종무 분)를 중심으로, 유신 시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을 체포하기 위해 마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 설계되어가는 시간이 공간의 이동을 통해 감각적으로 체험되고 그려진다. 전작 공연에서는 '미궁'을 고전적 은유로 끌어와 권력의 장치를 건축물로 형상화했다. 크레타 섬의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한 미궁은 남영동에서 민주주의를 가두고 죽이기 위한 구조로 감각되어졌다. 여전히 남영동을 맴도는 대학생 송경수(송현섭 분)는 박종철 열사가 대공분실로 끌려가던 1987년을 떠올리며, 80년대 고문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권나은(이가을 분)은 대공분실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찾고, 해설자 윤미숙(전국향 분)과 함께 70~80년대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핏자국 속에 진실이 실종된 채 설계도의 미궁을 헤매는 시간을 관객과 마주하게 한다. 전작에서는 해설자로 살아가는 윤미숙이 1986년 그날, 대학생 송경수가 명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여자친구 '윤정이'로 드러나며 극적인 반전을 주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쓰러져가며 잊지 못한 여인이 윤미숙이였다. 작가의 취재와 해설자의 설명 사이로, 대공분실에서 죽어간 망자들과 고문관, 그리고 김치열을 떠올리게 하는 허일규(손성호 분), 설계도면을 그린 양신호(이종무 분) 등의 은밀한 관계가 재현된다. 프롤로그는 마치 망자들의 진혼곡처럼 시작된다. 대공분실을 떠도는 망자들처럼 말이다.
해설자의 설명은 대공분실이라는 실재의 역사 공간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감각된다. 전작에서는 미궁의 설계도면을 그린 건축가 김수근과, 송경수의 고문과 죽음의 기록을 응시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그 잔혹했던 시대의 폭력성을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된다."한때 옆 건물은 롯데제과 공장이었어요"라는 해설자의 말과 작가의 질문은 아이스크림과 고문, 단맛과 피비린내가 이 좁은 골목에서 공존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아이러니를 소환한다. 고문실과 제과공장이 나란히 서 있던 시대의 잔혹함은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조차 역사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기억의 장치가 된다. 이동은 대공분실 정문 앞으로 이어졌다. 아치형 창문은 째려보는 듯했고, 벽은 비명소리로 습기가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물 아래에서 해설자는 이 건물을 1976년 완공한 내무부 장관 김치열 이름을 다시 소환한다. 공간은 설명과 함께 이동되면서도 공포감이 밀려왔다.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오르자 철제의 부딪힘은 괴기했고, 2층 설계실로 향하는 길목에선 섬뜩함이 느껴졌다.
양신호의 설계 사무실은 겉보기에 평범하다. 벽에 붙은 '80년대 축발전'이라는 거울과, 나선형 계단의 설계 도면을 입체화한 벽면은 시대의 비극을 암시한다. 그 공간에서 허일규와 양신호가 마주한다. 허일규(손성호 분)의 지시 아래, 양신호는 고문을 위한 붉은 타일 욕실 구조를 설계한다. 이 공간 장면은 고문이라는 물리적 폭력을 위한 공간이 어떻게 조형되고 실행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허일규는 대형 스크린에 떠오른 '지옥의 설계도'를 응시하며 말문을 연다. "인간의 고통을 파고들어, 간첩들의 피고름을 짜내는 겁니다." 설계도는 한 번 들어오면 죽음으로서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의 도면이다. 관객은 현재의 응시자로서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되며, 공간은 산 자와 역사와 마주하는 자, 진실을 기록하려는 이들과 아직도 죽음에서 깨어나지 못한 인물들이 그림자처럼 교차하는 장소가 된다. 한 관객은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설계 도면을 바라보다 끝내 고개를 돌렸다.

◆ "다시 날고 싶습니다" 물고문 욕조의 역사와 기록, 침묵의 증언
이어지는 공간은 송경수가 고문을 받던 특수조사실 공간으로 이동된다. 약 3평 크기의 방 구조에 내부를 관찰하는 CCTV와 모니터가 달려 있고, 철제 책상과 80년대 카세트테입 녹음기, 모나미 볼펜이 놓여 있다. 관객들은 이 공간에서 송경수의 고문을 목격하게 되고 80년대의 대표적인 가요가 흘러나오자 빨간욕조의 방으로 끌려가게 된다. 해설자는 "여기가 고문을 했던 곳입니다. 간첩을 고문한 게 아니라 간첩은 만들어졌어요."라고 말한다. 이어 송경수의 영혼이 소환된다. 그는 쓰러진 채 한켠에 닫힌 욕조의 방으로 사라지며 "다시 날고 싶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고문실을 나와 복도에서도, 명동 거리에서 여자친구 윤정이를 만나기로 한 86년 그날의 대학생 송경수의 절규가 생생하게 작가적 상상으로 그려진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차디찬 죽음으로 붉은 타일 바닥 욕조에서 허일규가 원하던 피고름이 되어 사라져간다.
이어지는 이동은 대공분실 속으로 사라져간 피해자들의 물품들과, 그 위로 아크릴판으로 된 설계 도면을 책상 면 구조로 상징화해 보여준다. 설계도면과 민주주의 역사를 죽음으로 바꾼 죽음들은 여전히 그 도면 위에 누워 있는 묘비명이다. 마지막 공간은 물고문 욕조가 달린 5층 복도로 이동된다. 몇 사람이 방으로 들어서면 문이 닫히는데, 내부는 외벽 돌출형 직사각형 창문 두 개가 붙어 있고 숨조차 쉴 수 없는 방이다. 욕조는 무덤처럼 보인다. 이어 녹음기의 소리가 들린다. 조총련과 접선한 간첩으로 조작됐다가 20년 가까이 지나 무죄를 선고받은 1989년 조총련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김철 씨가 눈을 가린 채 철문을 통과해 나선형 계단을 올라 욕조에서 물고문의 폭력을 견디던 증언이 그날처럼 들린다. 이 소리를 다 들을때까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뱃속을 찌르는 듯한 음향, 소니사의 오래된 마이크, 욕조를 흐르는 물소리, "살려 달라"는 절규들. 마지막은 벌건 욕조 타일로 둘러진 2평 남짓한 고문실에, 여전히 누워 있을 것 같은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마주하며 건물 밖으로 이동한 관객들은 철문 너머로 유유히 사라져가는 <미궁의 설계자>를 바라보게 된다. 80년대 국가폭력의 가해자는 여전히 숨을 쉬고 살고 있는 듯 했다. 지하철 역으로 행하는 골목에서 다큐감독(권나은, 이가을 분)의 대사가 들렸다."설계자의 이름 없이 긴 시간을 버티고 서 있는 이 검은 벽돌의 건물. 이 건물은 건축된 이후 수많은 비극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상상해 봅니다 검은 벽돌의 건물 안에서 비명조차 은폐시키려던 자들과 좁은 창문 저 안쪽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떨고 있던 사람들을."배우들은 진심으로 시대의 역사를 읽으려 했고, 안경모 연출은 재현보다는 역사의 사실을 실제 공간에서 감각될 수 있도록 공간 이동을 구성했다. 공간과 역사적 사실성을 구현하는 사운드와 소품들은 감각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역사적 실제 공간에서 '배우들의 연기하기'와 드라마적 구성이 역사적 공간의 실재와 완전한 시대의 폭력성을 감각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역사를 인식하는 효과는 상당했다."이곳에서 간첩은 만들어졌고, 한 인간의 삶은 지워졌다."는 대사가 지워지지 않았다. 죽음으로 바꾼 한국 사회 민주주의로 세워진 용산과 남영동 고층 빌딩들은, 여전히 남영동대공분실로 불리던 흑색 벽돌 건물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장소특정 이동형 연극으로 재소환된 <미궁의 설계자> 남영동 대공분실은 "죽음과 핏물로 쌓아올려진 국가 고문과 폭력의 유산"이며, 관람객들이 그 진실의 미궁을 걸어야 할 이유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다가오는 6.10 민주항쟁 기념에 맞춰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뀌었고, 시민들한테 개방된다.

|미니 인터뷰 ( 연극집단 반 대표/ 김지은)
─ <미궁의 설계자>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김민정 작가와 2021년도 여름에 예술의전당 공연을 보러 갔던 일이 계기가 됐죠. 신작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는데, 공모 작품이 하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제가 먼저 찜했죠(웃음). 이후에 발표가 났고 창작산실 대본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그렇게 희곡을 받아서 안경모 연출님, 배우와 스태프 분들과 함께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준비하게 되었던 작품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초연 당시 미궁의 설계자는 그동안 연극집단 반에서 공연해오던 스타일과는 다른 작품이였는데.
"대표가 된 후에도 '우리 극단은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고정된 틀은 없지만 사회적인 고민이나 이슈, 주제에 끌리는 편이에요. 극단에 상임 연출이 없는 것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고요. 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다양한 스타일로 시도해보고 싶어요. 연극집단 반이 앞으로도 그런 다양한 색깔을 시도할 수 있는 극단이 되었으면 해요."
─ 결과적으로는 이 작품이 '한국연극 베스트 7'에 선정이 되었고 작품성을 인정받게 됐다. 김민정 작가, 안경모 연출도 애착이 갈만한 작품일텐데.,..
"김민정 작가가 <미궁의 설계자>를 대표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초연 당시 안경모 연출님도 지금까지 해온 연출작 중 가장 고민이 많고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만큼 작가, 연출, 배우는 물론 모든 창제작 스태프들이 마음을 다해 함께 만든 작품이에요. 그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고, 그래서 이렇게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었죠."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연극으로 <미궁의 설계자>가 역사적 현장에서 장소특정 이동형 연극으로 재공연된 과정은.
"초연 때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자료 도움을 받았어요. 관계자분들도 공연을 보러 오시고, 소통과정이 계속 있었죠. 작년에는 이재오 이사장님도 직접 공연을 관람하셨고요. 당시에도 우리 '미궁팀' 내부에서는 "이 작품을 실제 소재가 된 공간에서 공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기념관 개관이 늦어지던 중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측에서 개관 기념 공연으로 <미궁의 설계자>를 제안해 주셨던 겁니다."

─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상징적인 장소라 공연과정도 쉽지 않겠군요.
"1월에 연출님과 현장을 답사하고, 공연 진행을 결정했어요. 2월부터 본격적인 사전작업이 시작됐고, 각 분야별 감독님들의 답사, 회의, 작가님 대본 수정, 연출님 구성 및 관객 동선 계획, 시스템 점검, 예산 협의 등 정말 많은 협업과 조율이 필요했어요. 행안부 소속기관인 만큼, 개관 전에는 내부 준비도 한창이었을 텐데, 공연을 위해 아낌없이 협조해 주셔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작품을 실제 공간에서 공연한다면 이머시브 형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내부에서 오랫동안 나왔던 얘기예요. 그런데 '관객이동형 장소특정연극'이라는 명칭은 연출님께서 정하셨고, 작품을 공간에서 치밀하게 펼쳐주셨어요."
─ 극장에서 드라마 구조로 미궁의 설계자를 느낄 때 하고 실제 공간에서 감각되는 폭력성은 상당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드라마 구조 안에서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따라가게 되잖아요. 그런데 실제 공간인 대공분실이 있던 장소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까, 관객들이 체감하는 폭력성이나 억압의 무게가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제작진들이 답사마다, 그 엄숙함과 실제 공간이 지닌 기운에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본격적인 연습을 민주화운동기념관 다목적실에서 했는데, 3주 넘게 매일 그 공간으로 연습하러 다녔어요. 야외나 대공분실로 직접 들어가서 장면을 맞췄고요. 검은 벽돌 건물, 좁은 창문, 나선형 계단, 5층 조사실… 그 공간을 매일 지나고 경험하면서, 공연 전에 공간을 이해하고 '길들여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공연 중에는 관객들 상태도 계속 살펴야 했어요. 특히 5층 조사실 장면은 저희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논의를 했어요. 인원수 제한, 문을 닫는 정도, 절대 강제하지 말 것 등 세부적인 사항까지 신경 썼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관객들이 5층 조사실을 '견딜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걱정이었어요. 실제로 피해자 유가족분들이나 지인분들 중에는 너무 힘들어하시거나, 5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신 분도 계셨어요. 야외 장면 중 경수 연행 장면을 보시고 이동을 멈추신 분도 있었고요."

─ 두 작품을 본 관객들은 어떤 반응이였죠?
"관객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신 건 "이런 극장 공연을 실제 대공분실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하려고 하지?"였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도 초반엔 정말 가능할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그런데 공연이 진행되고 나서는, "극장 공연도 좋았지만, 이번 실제 공간에서의 공연이 훨씬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진폭이나 몰입도가 다르다는 반응이었죠. 어떤 분은 "이런 공연이라면 시즌제로 상설 공연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세금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아주 뿌듯한 피드백도 주셨어요."
─ 내년은 '연극집단 반'도 창단 30주년인데.
30주년을 정말 잘 맞이하고 싶어요. 창단 멤버로 함께해온 만큼, 이건 극단의 30년이자 저의 30년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은 연극집단 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창작 신작을 준비 중이에요. 단원인 이가을 작가, 박장렬 연출과 함께 새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처음엔 "한 작품만 잘 만들면 되겠지"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30년을 잘 돌아보고, 그 시간을 정리한 뒤, 다음 30년으로 또 한 발 나아가고 싶습니다.
─ 연극집단 반의 계획은.
"<미궁의 설계자>, <예외와 관습> 같은 작품은 저희 극단의 중요한 레퍼토리로 삼아 재공연은 물론, 지역 공연과 해외 공연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에요. 창단 30주년이 단지 지나가는 숫자가 아니라, 연극집단 반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30년의 시간, 잘 돌아보고 또 나아가려 합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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