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김우석] 버텨내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오래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말이 있다.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명언이다. 한때 정계에서 소외되고 지탄받던 김 전 총리가 꿋꿋이 버티며 결국 역사에 다시 등장했던 모습을 자조적이지만 의연하게 표현한 문구다. 이는 정치에서 '버팀'과 '생존'이야말로 진정한 복수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이가 진정한 강자'라는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란 말이다.

요즘 많은 보수우파 진영 사람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아쉬움과 원망을 토로한다. 만약 그가 욱해서 무리하고 과격한 일을 벌이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만 있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확실한 보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십중팔구 이재명 대통령은 실형을 선고받았을 것이고, 역사의 물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다.

이재명이 없는 민주당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수많은 법정 출두, 언론과 여당 그리고 많은 국민의 비판과 비난을 견디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법 리스크'를 극복하고 대통령직을 확보했다. 이 대통령은 '잘 버텼기 때문에' 결국 지존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버티는 힘'이 어떤 능력보다 위대함을 증명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다. 위기와 고난에 인내하고 참아내는 능력으로 살아남고 번성했다. 눈앞의 유혹과 고통을 견뎌내는 능력이 지금 인류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회복탄력성이 개개의 인간에만 국한됐다면 버텨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기억과 지혜를 세대 간에 전수하고 서로 의지하며 버텨냈다. 결국 인간이 '강한 동물'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동물이고, 외톨이 개체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버텼기 때문에 지구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보수우파 진영은 또 다시 겨울을 맞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이 오는 듯 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봄, 여름, 가을이 사라지고 다시 겨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많은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이 빙하기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그냥 버티기만 해서는 안된다. 버티며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앞장서 버텨내고 방향을 잡아야 할 국민의힘은 또다시 '탄핵의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양새다. 알량한 당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이들에 줄 서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난장을 이룬다. 철 지난 '친윤'과 '반윤'으로 갈려 소모적인 정쟁을 벌일 기세다. 이는 '계엄'과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로 드러날 것이다. 다가오는 당권 경쟁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은 과연 스스로 혁신해 회생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에도 구조조정이나 혁신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임시방편으로 내세운 결과 더 큰 혼란을 자초했다. 지금 상황은 그 당시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감당해야 할 상대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막강한 세력이다. 더 이상 임기응변 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는 '뭔 되지도 않는 소리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도 같다. 국민의힘과 보수우파는 이 암흑의 시기를 버텨내야 한다. 그리고 그 버티는 시간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묘목을 심어야 한다.

큰 재목일수록 스스로 공을 들여 키워야만 한다. 수권정당이라면 마땅히 이를 본업으로 삼아야 한다. 허명 뿐인 '아카데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정치권에 인재를 공급해야 한다. 장기전을 위한 진지전에도 준비해야 한다. 지경을 넓혀야 한다. 건전한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하지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상한 각오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좌·우 건강한 양 날개로 비상하기 위해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