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화폐의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됐던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이 결국 멈춰섰다. 수년간의 연구와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였지만, 2차 테스트 단계에서 중단되면서 제도적, 기술적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형 디지털화폐 구축 구상이 중요한 분기점을 맞고 있다.
◆CBDC 중단, 생태계 변화
한국은행은 CBDC의 설계 및 실험을 통해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미래를 제시하고자 했지만, 정작 실사용을 위한 법적 기반과 상용화 로드맵이 미비한 채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내부적으로도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간 주도의 디지털화폐,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CBDC와 예금 토큰을 동일 선상에서 접근해온 은행권은 한국은행의 실험 중단 이후 각자도생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권에서는 주요 시중은행들을 중심으로 컨소시엄 또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블록체인 기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핀테크·빅테크 기업과의 협업도 병행되며, 민간 주도의 디지털화폐 생태계가 빠르게 조성되고 있는 모양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발행 주체에 대해선 은행과 민간 기업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CBDC 사업 중단 이후 내부 전략 재정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 결합
이처럼 민간 부문이 디지털화폐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업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정수 서울대 금융법학과 교수는 지난달 정책토론회에서 "CBDC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경쟁 구도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역할로 통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히 "CBDC는 금융 안정성과 결제의 최종성 측면에서 유리하고, 스테이블코인은 기술 혁신성과 국제적 확장력에서 강점을 가진다"며 "각자의 장점을 융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폐쇄형 구조의 CBDC는 국제 연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비용 효율성과 크로스체인 호환성 측면에서 우수한 유연성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디지털화폐 시스템의 다층적 구성안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과 기술적 통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CBDC는 도매 결제에 중점을 두고, 민간에서는 규제형과 오픈형 스테이블코인을 각각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CBDC 60%, 규제형 스테이블코인 25%, 오픈형 스테이블코인 15% 비중으로 설계된 디지털 통화 생태계를 제안하며,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기술·유동성 백스톱 등 전방위적인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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