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Z세대 사이에서 책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SNS에는 책과 함께 촬영한 감성적인 사진이 많아지고 있으며, 누군가는 책을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갖기 위한 것'이라며 소장용 독서를 권한다. 이런 흐름을 일컫는 신조어가 바로 '텍스트힙(Text-Hip)'이다.
텍스트힙은 '텍스트'와 '힙'의 합성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가 아날로그 매체인 책을 통해 세련됨을 표현하고, 책을 매개로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서 자체보다는 그 행위와 분위기다. 책을 읽는 장면을 연출하고, 공유하며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런 흐름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책을 '읽는 척'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교양 있어 보이고자 하는 욕망 자체도 결국 교양의 일부다. 사람들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표현해 왔다. 지금 젊은 세대는 그 방식을 책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새롭지 않다. 중세 유럽의 초상화를 떠올려 보자. 귀족이나 지식인들은 자신의 초상화에 책, 회화, 지도를 함께 그리게 했다. 유행하던 철학서나 예술 작품을 배경에 배치함으로써 자신이 지적인 사람임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과거의 '지적 연출'이 캔버스 위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여 년 전 강남 사는 지인을 통해 목격한 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늘 테이프레코더로 듣던 지인에게 "왜 하필 테이프냐?"고 물은 적이 있다. 더구나 스테레오도 아닌 모노 녹음이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옛날 방식 그대로 들어야 진짜 감동이 온다. 요즘 이게 유행이야." 당시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하나의 '클래식힙'이었고, 취향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설령 '사진을 위한 포즈'일지라도, 그 자체로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책을 멋지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그 태도 안에, 책이 여전히 '멋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가운 징후가 담겨 있다. 책은 결국 남는다. SNS의 포스트는 사라져도 그 책은 서가 어딘가에 남아, 언젠가 다시 펼쳐질 수 있다.
독서는 단지 머리로만 하는 행위가 아니다. 때로는 보여 주고, 흉내 내고, 반복하면서 스며드는 것이다. 트렌드는 변하지만, 책은 남는다. 그리고 그 책은 결국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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