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척추관절 클리닉] 코트 밖의 진짜 팀워크 – 여자농구 대표팀 주치의로 함께한 여름의 기록

대구 올곧은병원 임경환 원장.
대구 올곧은병원 임경환 원장.

지난 7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의 주치의로 함께했다. 선수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며, 땀과 투지, 팀워크와 감동이 가득했던 여름날은 지금도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공 하나만 있어도 몇 시간이고 뛰놀던 어릴 적 그 코트의 기억부터 지금은 병원 업무로 바쁘지만 아직도 동아리 팀에서 틈틈이 농구를 즐기는 지금까지 농구는 늘 내곁에 있었고, 이번엔 주치의라는 이름으로 대표팀과 함께할 수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조금 서먹서먹했다.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한 달 가까이 진천선수촌에서 합숙하며 이미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주치의는 정식 합숙 대상이 아니다 보니 자칫 '경기 때만 얼굴 비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훈련 기간 중 두 차례 선수촌을 먼저 찾아가, 팀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선 의학적인 기술만큼이나, 신뢰와 관계 형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첫 경기인 뉴질랜드전이었다. 신장의 열세로 고전했지만 흐름을 잘 이어가던 중 3쿼터에 주축 선수가 갑작스러운 부상을 당했다. 급히 라커룸으로 들어가 부상 선수의 응급처치를 하느라 경기를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다친 선수와 함께 TV로 극적인 버저비터 승리를 확인했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선수는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통증에 눈물짓던 상황에서도, "내가 빠져서 팀이 질까 봐"를 걱정하고 승리를 하고 나서야 안도했다. 그 진심 앞에서 마음 깊이 감동했고, '이 선수들을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후 우리 국가대표팀은 멋진 팀워크로 똘똘 뭉쳐 비록 메달은 놓쳤지만, 주축 선수들의 여러 부상 속에서도 4강이라는 값진 목표를 이뤄냈다.

현장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의 헌신과 팀워크였다. 경기 전 전술 및 상대편 분석을 위해 몰두하는 감독 및 코치진, 스텝과 선수들의 어머니 같은 매니저의 헌신, 경기 전후 테이핑, 스포츠 마사지,컨디셔닝 훈련에 온 힘을 쏟는 트레이너들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은 각자의 역할을 넘어서 진짜 하나의 팀이였고, 그 안에서 나 역시 의료진이기 전에 팀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작은 일상도 추억이 됐다. 선수들이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해, 어느날은 숙소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함께 먹었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다들 웃음이 피어났고, 그 짧은 식사 시간이 몸의 피로는 물론 마음의 긴장까지 풀어주는 진짜 회복의 순간이 됐다.

시간이 흐르며 선수들과 더 가까워졌고, 어느 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의 모든 선수들이 수술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부터는 경기장에서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 하나하나가 더욱 특별하게 보였다. 진심으로 리스펙(respect)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했던 선수들이 경기장 밖에서는 또래 친구들처럼 주사바늘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선생님, 저 진짜 주사 무서워요…."라고 말하던 코트밖의 그 반전 매력 덕분에 나 역시 많이 웃고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기억과 따뜻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돌아왔고, 앞으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한 자양분을 얻은 시간이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다시 이 자리에서 김치찌개와 팀워크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선수들을 응원하며 함께 뛰고 싶다.

임경환 대구 올곧은병원 원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