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수용] 퇴직연금과 가상화폐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줄지어 은퇴하면서 노후 생활에 대비한 연금이 화두(話頭)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3중 연금' 구조를 갖추라고 조언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여생(餘生)을 책임질 줄 알았던 국민연금은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2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의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67만5천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1인 적정 생활비가 192만원 정도이니, 용돈이 맞다. 개인연금까지 가입해 그나마 여윳돈을 받는 은퇴자는 전체의 5% 남짓이다. 퇴직연금도 골치 아프다. 쌓아 놓은 돈에 비해 수익률이 터무니없이 낮아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천억원에 달한다. 1년 만에 49조3천억원이 늘었다. 퇴직연금 가입률이 53%임을 감안하면, 추가 가입 시 적립금은 연간 18조~19조원에 달해 2033년엔 940조원을 넘어선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최근 10년간 평균 수익률은 2.3%에 불과하다. 연금에 넣어 두느니 평균 금리 3%대인 정기예금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다. 지극히 소극적인 퇴직연금 운용(運用) 구조 때문인데, 거의 대부분이 원리금을 보장해 주는 은행 예금이나 국공채 등에 묶여 있다.

새 정부 들어 퇴직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일시불 퇴직금은 사라지고 퇴직연금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수익률 제고(提高)를 위해 퇴직연금 기금화도 추진한다.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나오면서 퇴직연금 기금을 누가 어떻게 굴릴지도 관심사다. 국회에 여러 법안이 올라와 있는데, 운용 주체를 두고 이해집단 사이에 첨예하게 맞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퇴직연금 운용에도 상식을 뛰어넘었다. 최근 퇴직연금 계좌의 가상화폐 투자를 법제화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가상화폐 투자가 가능해진다는데,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2027년 1분기에 가상화폐 시장 유입 자금이 한화(韓貨)로 122조~616조원에 이른다. 트럼프의 가상화폐 사랑은 유명하지만 안정성을 담보해야 할 퇴직금을 두고 도박을 벌여도 괜찮을지는 의문이다.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로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면 퇴직금도 공중분해된다.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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