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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강민구] 변기(便器)가 된 영웅의 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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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최강의 권력자 지백(智伯)은 한(韓)·위(魏)·조(趙) 세 가문에 영지(領地)를 바치라고 강요하였다. 한과 위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의 요구에 응하였으나 조(趙)의 조양자(趙襄子)는 거부하였다. 이에 지백은 한·위와 연합하여 조양자를 공격했으나, 얼마 뒤 조양자에게 설득된 한·위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가문도 멸족되었다. 조양자는 지백에게 원한이 사무쳐 그의 해골에 옻칠을 하여 변기로 썼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진나라의 영토는 한·위·조 세 나라로 나뉘니, 이는 봉건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강국들이 등장하는 전국시대의 서막이 되었다.

『국어(國語)』에 따르면, 진(晉)나라의 지선자(智宣子)가 지백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을 때, 그 가문의 인사가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다섯 가지나 있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한 가지가 있다. 용모가 빼어나고 체격이 장대한 것,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기운이 넘치는 것, 여러 기예에 두루 능한 것, 문장이 뛰어나고 지혜가 예리한 것, 성격이 강직하고 결단력 있는 것이 다섯 가지 장점이다. 그러나 그는 어질지 못한 단점이 있다. 만약 이 다섯 가지 장점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며 어질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그 누구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를 후계자로 세운다면, 지씨 가문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라며 극구 반대하였지만, 그 의견은 묵살되었다.

북송(北宋)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사학가인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지백의 멸망 원인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지백이 망한 이유는 재주가 덕을 이겼기 때문이다. 재주와 덕은 본질적으로 다른데 사람들은 그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똑같이 '훌륭하다'고 여긴다. 이것이 사람을 잘못 보고 그릇되게 쓰는 이유이다. 총명하고 강인한 기개를 '재주'라 하고, 올바르고 온화한 마음을 '덕'이라고 한다. 재주는 덕을 실현하기 위한 재료이고, 덕은 재주를 이끄는 주체이다. 따라서 재주와 덕을 모두 온전히 갖춘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둘 다 부족한 사람을 '우인(愚人)'이라 한다. 또 덕이 재주보다 뛰어난 사람을 '군자'라 하며, 재주가 덕을 능가하는 사람을 '소인'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사람을 등용할 때는 성인이나 군자를 얻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소인보다는 우인을 택하는 편이 낫다. 군자는 재주를 활용하여 선(善)을 행하고, 소인은 재주를 활용하여 악(惡)을 행하기 때문이다. 재주를 이용해 선행을 하는 사람은 그 선함이 더없이 훌륭해지지만, 재주를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 악이 또한 더없이 극심해진다.

어리석은 사람, 우인은 비록 악행을 저지르려 해도 지혜와 힘이 모자라 감히 큰 해악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소인은 지혜가 있어 간계를 꾸밀 수 있고, 용맹이 있어 폭행을 실행할 수 있으니, 이는 마치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아 그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부터 나라를 어지럽힌 간신과 집안을 망친 자식들은 재주가 많지만, 덕이 부족해 파멸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어찌 지백 한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우리는 최근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目睹)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막중한 권력을 위임하였는데, 실망스럽게도 그들은 출중한 능력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고 큰 혼란을 야기하였다. 영웅 지백의 해골이 변기가 되었듯이 그들은 오명(汚名)을 면치 못할 것이다. 리더십은 실력과 인품의 조화로 이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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