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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윤정훈] 정치인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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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 정치부 기자
윤정훈 정치부 기자

정치인과 연예인은 닮았다. 자신을 드러내며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에게 인기는 단순히 있으면 좋은 게 아닌, 존속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 인기를 위해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가면을 쓰고, 필요하다면 곧바로 얼굴에 다른 가면을 갈아 끼울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과 연예인이다.

보통 '가면을 쓴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정치인과 연예인은 가면을 쓰지 않는 것이 직무 유기일 수 있다. 물론, 부정부패를 은폐하거나 팬을 기만하기 위해 쓰는 가면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들의 직무 유기 여부는 그 가면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정치인은 국민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가면을 써야 한다. 이때 쓰는 가면은 대의(大義)를 위한 가면이다. 이 대의의 가면을 쓰고서 껄끄러운 상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정치인의 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이 대의의 가면을 잘 쓰고 있을까?

지난 7월 초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과 경상북도는 올해 하반기 중 예산정책협의회를 개최하기에 앞서 경북 지방자치단체들과 민주당 경북 지역위원회(지역위)들이 각각 협의를 마치게 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지자체와 지역위가 논의를 통해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걸었던 시군구별 '우리 동네 공약'을 보다 구체화하고 지역 실정에 맞게 수정한 뒤 이를 토대로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경북 내 지자체들과 민주당 지역위 11곳이 협의를 잘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취재를 해 봤더니 취재할 게 없었다. 아직 경북 내에서 지자체와 민주당 지역위 간 협의가 완전히 이뤄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를 기준으로 그나마 포항북, 포항남울릉 지역위와 포항시가 지난달 14일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단 회의를 진행했고, 구미 지역위와 영주영양봉화 지역위 또한 같은 달 각 지자체와 1차 접촉을 마쳤을 뿐이었다.

한 지역위원장은 지자체로부터 "아직 국민의힘과 만나지 못해 민주당과 먼저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협의 제안서를 지자체에 전달했으나 한 달 넘게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지역위도 있었다.

경북은 22개 시군 중 시장 궐위로 권한대행 체제인 김천과 영주, 무소속으로 당선된 영천, 울릉, 의성 등 5곳을 제외한 17곳 모두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인 만큼 보수세가 짙어 주요 선거에서 누가 국민의힘 공천을 받느냐가 사실상 당선을 결정짓는 구조다. 지역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밉보여서'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여당과의 공조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자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협의 의지가 아예 없는 지역위들도 더러 있었다. 한 지역위원장은 "별로 지자체와 협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사실 매일신문과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것은 소위 '꼴통 보수'에 대한 솔직한 비토였다.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인 내년도 예산안이 지난 2일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본예산이 통과하는 오는 12월 2일까지 지역 핵심 과제 추진과 국가 예산 확보를 위해 지역에서도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원팀을 이뤄 동분서주해야 할 때다.

지금 지역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솔직한 반목이 아닌 '대의의 가면'이다. 지역민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게 만들겠다는 대의를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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