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 리뷰] '광란'으로 미친, '광인(狂人)세상, '쌈바의 연인'을 부르는 장희재 번역 · 강훈구 스타일의 <광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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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광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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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지난 2일, 중국에서 대대적인 제80주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이 열리고 있었다면 그 시간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제8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루쉰의 소설을 좡자윈(莊稼昀)이 희곡으로 각색한 〈광인일기〉는 장희재 번역본(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학과 교수)을 바탕으로 낭독 텍스트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광인일기〉는 제8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으로 좡자윈(莊稼昀)이 각색하고 장희재 교수가 번역한 희곡을 강훈구가 연출한 무대다.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1918)는 중국 봉건예교를 "식인의 문화"로 규정한 신문학의 혁명적 텍스트다. 루쉰의 사회적 문제의식은 중국 역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사회의 폭력성, 집단적 광기, 권위와 전통에 가려진 잔혹한 생존 논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마찬가지로 각색된 희곡은 현대 사회로 확장해 삶의 불평등, 약육강식의 경쟁 사회, 종교의 정치화와 집단성, 진영 논리와 정치적 신념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인간의 살점만으로 포식하는 식인사회로 드러냈다. 강훈구 연출은 한 발 더 들어가 루쉰의 광기 사회, 미쳐가는 인간 광기의 집단적 원인을 100년 전 봉건적 시대로 묶어두지 않고 현재 대한민국 시간으로 소환한다. 낭독 극 형식을 취했지만, 강훈구는 텍스트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대한민국의 현재 정치·사회적 풍경과 겹쳐지는 시대적 방식으로 연출성을 변주시킨다. 루쉰의 '식인사회'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강훈구 스타일로 소환되어, '광란'으로 미친, '광인(狂人)들의 세상'을 무대로 표면화했다.

작품에서 광인( 류세일 분)이 살아가는 세계는 '식인의 사회'이다. 정상인은 광인이 유일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인간들이 서로의 살점을 포식하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오히려 광인만이 유일하게 정상성을 지닌 인간으로 드러난다. 살육을 포식당하지 않을까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광인은 미쳐가고 되고 결국 '식인사회'에 백기를 들고 순응하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루쉰 소설에서 한 문장만 등장하는 '개'( 이주형 분)는 죽음과 인간의 살점만이 생존 양식이 되는 세계를 감시하는 존재이면서도, 광인이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이다. 마지막 장면에 개는 인간을 향해 일갈을 날린다. "너흰 밖에서 온순한 가축이고, 집에서는 사나운 짐승이잖아. 개만도 못한."

광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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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부터 강훈구가 바라보는 식인사회의 세상이 펼쳐진다. '광란'으로 미친, '광인의 세상' 풍경이다. 한 사람은 "윤 어게인"을 외치고, 한쪽에서는 친미 우파 집단이 등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이대남·이대녀를 풍자하며, 종교화된 우파와 정치적 진영전쟁으로 변해버린 대한민국의 현재가 소환된다. 그 사회에서 작동하는 질서는 좡자윈이 바라본 '식인의 사회'와 다를 바 없는, 정치 공화국으로 분열된 사회이다. 강훈구는 정형화된 구조를 체질적으로 거부한다. 배우들은 북을 치고, 트로트를 비틀며, 코러스는 수염을 붙인 채 대사를 메들리로 엮는다. 배우의 배가 북이 되고, 쿵푸 동작이 장면을 전복한다.

낭독극은 실연수준이고 번역이 매끄럽다. 연출적 장치들은 강훈구 특유의 놀이 방식으로 장면을 깨뜨리고 깽판을 벌이는 게 블랙코미디이다. 의미는 가볍지 않다. 정치외교를 전공한 연출답게 메시지는 묵직하다. 연출적으로 아쉬운 것은 프롤로그 풍경과 식인사회가 맥락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 부분이다. <광인일기>를 완전한 강훈구 스타일로 재구성한 무대화가 되면 어떨까. 배우 이승훈, 김솔지, 남재국, 류세일, 박은경, 이주형, 유종연이 강훈구의 광인일기를 같이 썼다. <광인일기>는 한중연극교류협회의 '제8회 중국희곡낭독공연'으로 <현실동화>(연출 심지후), <날개 달린 두약>(연출 김수희) 낭독극 세 편이 공연됐다.

장희재 교수
장희재 교수

|미니인터뷰 | <광인일기> 번역 장희재 교수

<광인일기>를 번역한 장희재 교수는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시절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을 접했고 김재엽 연출이 이끄는 극단 드림 플레이 배우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부교수와 한중연극교류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중국 현대극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로는 『원칙』, 『최후의 만찬』, 『만약 내가 진짜라면』, 『워 아이 XXX』, 『장공의 체면』, 『붉은 말, 만원 버스』 등이 있다.

─ 좡자윈(莊稼昀)이 희곡으로 각색한 〈광인일기〉와 원작의 차이는.

"원작 소설 <광인일기>가 봉건사회의 식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면, 좡자윈이 연극으로 각색한 <광인일기>는 식인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는 동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원작 내용을 따라가면서도 부분부분 원작의 맥락을 해체해 루쉰의 다른 산문, 잡문의 내용이 추가됐다. 반복과 나열을 통해 식인의 이미지를 강화한 것도 각색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낭독 극으로 소개된 <광인일기>는 소설에서 희곡으로 장르 전환을 하면서 조 씨네 집 개 캐릭터가 원작보다 연극성이 확장됐다. 일기체 형식으로 전달되었던 극 중 주변 인물들도 코러스로 활용해 연극화한 된 것이 다른 점이다."

─ 한국연극이 루쉰의 작품을 동시대로 해석해 무대화하는 이유는.

"시대가 변해도 생명력을 갖는 것은 고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루쉰의 붓끝은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갖고 있다. 전사의 글쓰기를 연상시킨다. 이육사, 리영희와 같은 한국 지성인들도 루쉰의 영향을 받았다. 연극도 인문학적 사유를 확장하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한국무대에도 지속해서 소환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낭독극화 된 이번 작품이 '중국에서 가장 거칠고 강렬한 연극'이라고 했는데.

"이번 공연은 낭독공연이기 때문에 비교하긴 어려움이 있다. 중국 공연에서는 당시 베이징의 이미지가 활용되었다.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 부근으로 베이징 도시 전체를 재건설하는 것 같은 대대적인 도시 정비 과정이 있었다.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공사 먼지가 자욱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농촌에서 올라온 농민공들이었다. 농민공들은 도시를 구축하는 주역이었지만 호구제도에 근거한 사회보장제도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로 볼 수 있다. 무대디자이너 출신 연출가인 리젠쥔(李建軍)은 베이징 로컬 이미지에 착안해 깨어진 벽돌들이 산재해 있는 무대로 구성했다. 그 사이를 배우들이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던가, 서로 벽돌을 던지며 갈등을 표면화 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먼지가 자욱한 무대에서 마치 문명의 바벨 탑을 쌓아 올리듯 벽돌을 쌓기도 한다. 전체 이미지는 디스토피아로 구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피나 바우쉬를 연상시키는 신체 언어와 그로테스크한 움직임도 강렬했다."

광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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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공연은 낭독공연이면서도 동선과 움직임, 소리를 사용하며 강훈구 연출과 공놀이 클럽의 스타일로 해석된 것 같다.

"드라마가 살아있는 작품일 때 낭독만으로 전달되지만, 이번 작품처럼 드라마가 해체된 실험극의 경우 낭독으로만 작품을 전달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실연처럼 느껴질 정도의 입체낭독극으로 표현됐다. 2014년에 중국 공연은 무겁고 충격적인 무대였다면, 이번 공연은 놀이성을 활용해 가벼우면서 충격적인 무대였다. 개인적으로는 인위적인 언어 리듬 속에서 현실이 일그러지고 광증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그로테스크함이 느껴졌다. 나중에 연출에게 의도한 것이냐고 물어봤는데, 그렇진 않다고 했다."(웃음)

─ 인간으로 의인화된 (개)와 극 중 광인의 메시지는.

"극 중 광인은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사회가 당연시해왔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람들을 각성시키고자 하는 선각자이다. 도덕과 가치관을 넘어 니체식 '초인'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려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개'는 소설에 단 한 줄 등장하는데, 연극화되면서 극 중에서 적극적인 캐릭터로 보이는 인물이다. 개의 캐릭터는 루쉰이 소설을 쓸 때 모티프를 얻은 고골의 「광인일기」에 나오는 개에 가깝다. 개는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서 인간을 관조하고, 조롱하고,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파악하고 있는 냉소적인 존재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광인과 냉소적으로 조롱하는 개는 한 팀처럼 움직이며 인간세계를 낯설게 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광인일기>를 통한 루쉰의 시대 인식은 뭔가.

"「광인일기」가 수록된 소설집 『외침』 서문을 보면 루쉰의 당시 시대 인식이 잘 드러난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이 서문에는 '철의 방'으로 은유할 수 밖에 없었던, 적막감과 절망감이 가득한 현실인식과 희망을 놓을 수 없었던 루쉰의 고뇌가 드러난다. 몸부림치는 광인과 냉소하는 개가 한 팀처럼 대화하는 모습에서 고뇌하는 루쉰의 자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 강훈구 연출은 <광인일기>를 한국사회 정치 현상으로 풀려고 한 것 같다. 루쉰의 식인문화와 현재 사회가 연동이 안 된 측면도 있는데.

"식인은 실제 행위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상징이다.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이고, 철학의 문제이다. 유가의 핵심사상은 짐승과 차별화되는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인간성의 근본은 바로 인(仁)이다. 그러나 유가적 세계관을 가졌던 봉건사회는 표면적으로 인의 도덕이란 미덕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비인간화와 타자화가 자행되고 있었고, 루쉰은 미신, 맹목적 믿음, 허위의식, 그리고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마비된 국민성을 비판하고자 했다. 좡자윈은 이를 동시대 희곡으로 각색하면서 작품 곳곳에 산발적으로 중국의 동시대적 은유와 상징들을 배치하였다. 이를테면, 개발과 발전 이슈에 등한시되는 불평등의 문제, 무한 경쟁 속에 자행되는 타자화의 문제, 그리고 종교처럼 맹목화 된 정치문제들이다. 낭독공연에서는 이 작품이 외국 작품이지만 국내 관객에게도 작품 텍스트가 가진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강훈구 연출이 국내 상황을 스케치한 것으로 보았다. 낭독공연이라는 제한된 형식 속에서 텍스트를 건드리지 않고 연출적으로 처리하고자 했던 연출가의 의도로 생각했다. 어려워한 관객들도 있었고, 상징적인 의미를 연상시킨 관객들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이 공연으로 이어진다면 강훈구 연출 스타일로 표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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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인일기>에서 사회적 구조의 배경이 되는 식인문화(사회)가 현시대에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최근 한국 모 제빵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끼임 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뉴스를 접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나도 모르게 네 살을 나도 먹었구나.'라는 구절이었다. 그러나 식인의 행위를 좀 더 확장하여 이해하면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행위는 무수히 자행되고 있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혐오의 낙인찍기, 미덕을 가장한 맹목적인 믿음과 강요, 그리고 무비판적 수용, 살아남기에 바빠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현상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는 백 년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지고, 발전했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사는 것 같은, 혹은 점점 더 야만스러워지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을 아직도 느끼는 것을 보면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극 중 인물들이 수염을 달고 나오기도 하고, 트로트를 부르기도 한다.

"번역자로서도 생각하지 못한 표현이었는데, 공놀이 클럽의 놀이 정신으로 봤다. 수염을 달고 나온 부분은 경전에 담긴 식인의 역사를 나열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성현, 또는 꼰대(?)를 희화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트로트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연출이다. B급스러운 풍자 방식으로 보았다. 중국 공연과는 결이 많이 다른 부분이었는데 오히려 소름돋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출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진 않았다."

─ <현실동화>, <날개 달린 두약>를 올해 중국희곡 낭독공연으로 선정한 이유.

"번역자들이 직접 보거나, 추천받은 작품을 번역하고, 이사회에 여러 편의 후보작을 올리면 투표를 통해 다음 해의 공연작을 결정하고, 그 작품에 어울릴 연출가 혹은 극단을 매칭한다. 이사들이 각기 투표한 이유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보통 작품성과 시의성의 기준으로 선정되고 있다. <현실동화>는 비인간 서사가 흥미롭고 <날개 달린 두약>은 노년의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 선정됐다."

─ 앞으로 '한중연극교류협회'의 역할과 방향은.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이웃 나라면서도 문학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분야이다. 특히 연극의 현대극은 미지의 영역이다. 2018년에 창립된 한중연극교류협회는 중국 고전과 현대극을 소개하기 위해 중국희곡낭독공연과 출판사업, 심포지엄 등을 개최해왔다. 35권의 현대극과 13권의 전통극을 출판했다. 공연으로 올라간 작품으로는 <물고기인간>, <최후만찬>, <만약 내가 진짜라면>, <낙타상자>, <모조인생>, <워 아이 XXX>, <원칙> 등의 작품이 있다. 국내 희곡을 중국어로 번역해 중화권에 소개도 해오고 있다. <그게 아닌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왕서개 이야기>가 지면으로 발표되었다. <그게 아닌데>와 <이게 마지막이야>는 현지 공연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 국내에 중국희곡을 더 알리고, 우수한 국내 희곡을 중국에 소개하는 활동을 한중연극교류협회에서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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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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