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 전환에 성공한 대만이 올해 한국 경제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업 경쟁력과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어온 한국이 인공지능(AI) 산업 재편에 대응하지 못하고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만, AI칩 대미 수출 급증
올해 2분기 대만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동기 대비 8.01% 증가해 지난 2021년 2분기(8.2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를 반영해 대만 통계청은 지난달 15일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0%에서 4.45%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내년 전망치는 2.81%로 제시했다.
반면, 한국은 올해 2분기 실질 GDP가 전 분기 대비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작년 동기 대비로는 0.6%로, 대만과 차이가 컸다.
1인당 GDP '4만달러'도 대만이 한국보다 먼저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만 통계청은 당장 내년에 자국 1인당 GDP가 4만1천19달러에 달해 사상 처음 4만달러 선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의 내년 경상 성장률 전망치(3.9%)를 대입하더라도 1인당 GDP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3만8천947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대만의 지난달 반도체 및 전자부품 수출은 각각 작년 동기 대비 37.4%, 34.6% 증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달 7일 대만에 대해 20% 상호관세 시행에 들어갔지만, 반도체 등 대만의 주력 수출 품목 상당수는 아직 이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
대만 재정부 통계처 차이메이나 처장은 관세 시행 전 앞당겨 물건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밀어내기'식 수출이 진정세라면서도 "AI 수요 등이 기대 이상"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그는 "월간 기준 대만의 수출이 한국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대만의 1∼7월 대미국 수출액은 이미 지난해 전체 규모를 넘어섰다. 반면 한국은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의 영향으로 8월 대미 수출이 작년 동월 대비 12% 감소했다.
이재명 정부는 정체된 성장 잠재력을 반등시킬 게임 체인저로 AI·초혁신경제를 지목하고 재정·금융·세제를 총동원한 집중 육성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간 한국경제의 도약을 방해한 구조개혁 고민이 뒷순위로 밀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부각한 장밋빛 미래에 가려 구조개혁의 절박함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조업 혁신, 역전의 요인
AI를 포함한 제조업 혁신 지연이 양국의 격차를 확대하는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의 주력산업은 10년이 넘도록 선박·석유제품·승용차·반도체 등에 머물러 있다. 시스템 반도체 등 일부 첨단 기술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위기론도 대두되고 있다.
결국 2010년 3%대였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대 후반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국토를 'AI 섬'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AI 산업을 반도체를 이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 중인 대만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대만은 올해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8%를 웃돌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상황에서 노동생산성이 정체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재편도 못 이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전날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공동 주최로 북부 타이베이 난강 전람관에서 열린 '세미콘 네트워크 서밋'에서 'AI인재 100만명 양성'을 선언했다.
특히 대만은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과 밀착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라이 총통은 완벽한 인프라 시설 구축, 핵심 기술 연구개발(R&D), 스마트 응용 확대 등을 통해 전세계 반도체의 '비(非) 홍색 공급망'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친미·독립' 성향인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테크 기업들의 위상과 역할이 급격히 위축되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대만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반도체 산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보며 "실용적, 개방적,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원칙에 따라 각국과의 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을 옥죄는 입법 활동으로 향후 한국이 대만을 따라잡기 힘든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만이 추격자에서 앞서가는 입장이 되는 순간이 머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홍색 공급망=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중국이 기존에 수입하던 중간재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면서 기존 공급망이 중국산으로 급속하게 대체되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댓글 많은 뉴스
법원장회의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독립 반드시 보장돼야"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 본회의 부결… 의회 앞에서 찬반 집회도
李대통령 "한국서 가장 힘센 사람 됐다" 이 말에 환호나온 이유
李대통령 지지율 50%대로 하락…美 구금 여파?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