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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의 每日來日] 오늘날,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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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포스텍 교수

미국 땅에 처음 발을 내딛던 때를 기억한다. 아내와 함께 보스턴 로간공항에 내리는 순간 받았던 그 야릇하면서도 감미로운 느낌과 이국적 냄새, 마중 나온 후배의 승용차에 짐을 싣고 공항을 빠져나올 때 바라보았던 청명한 하늘과 뭉게구름, 그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한가롭게 하얀 요트가 떠다니는 푸른 찰스강을 마주 보고 나는 MIT에서, 아내는 강 건너 보스턴대학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던 그 시절, 처음 보는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쇼핑하던 추억과 둥근 돔 형식으로 층층이 돌아가던 도서관의 오래된 책 냄새와 다운타운 교회에서 향유하던 격조 높은 음악회와 하버드 교정 잔디밭에서 아이와 뛰놀던 때를 기억한다. 내가 처음 경험한 보스턴은 자유와 학문의 도시였고 광활한 대륙 미국은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였다.

전쟁 후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미국을 공산당으로부터 지켜준 고마운 동맹국으로, 우리에게 원조를 베풀고 선교사를 보내주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일으켜 세워준 나라로 배웠다. 미국 서부영화 안에 등장하는 인디언 아파치는 원래 악당들이고 백인 보안관은 정의의 사도처럼 생각하며 자랐다. 후일 미국서 만난 친절하고 상냥한 백인 크리스천들과 최고의 학문을 열정으로 가르치던 노(老)교수들을 생각하면 분명 그들은 미국 사회의 도덕성과 지성을 지탱하고 있었던 한 축임에 분명했다.

그 영향이었을까? 20대를 술로 지새던 나는 30살의 나이에 미국에서 전격적으로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 세계관의 변화는 NASA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나를 붙잡기 위해 월급을 올려주고 미국 영주권을 주겠다는 유대인 지도교수의 파격 제안을 뿌리치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선택하게 만들었고, 독립운동의 회한이 서려있는 땅 만주로 그리고 다시 북한 땅에 대학을 세우고자 평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북한을 출입하기 위해 다시 캐나다 영주권자가 되어 토론토 대학을 5년에 한 번씩 방문하면서 미국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나라 캐나다를 배우게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은 G7+ 회의가 열린 캐나다였다. 공항에 영접 나온 사람들 중에 원주민 추장이 눈길을 끌었다. 인디언 추장을 내보냈다고 홀대 논란을 제기한 보수언론도 있었지만, 사실은 원주민이 그 땅의 주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캐나다 정부는 의도적으로 귀빈 영접에 그들을 내세운다.

캐나다의 진실화해위원회는 총과 무력으로 그 땅을 빼앗았던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을 뿐 아니라, 공공 기관이나 학교의 회의와 수업 시작 전에 원주민들의 희생과 터전 위에 자신들이 살고 있음을 공적으로 감사하는 '토지 인정 선언(Land Acknowledgment)'을 암송한다.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차별정책을 실시하고 유색인종과 난민들을 몰아내고 있는 미국의 현 트럼프 정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무력으로 타 민족을 제압하고 식민지를 만들었던 모든 제국들이 그랬지만, 정복 후에는 반드시 그 나라를 분할 통치하고 서로 싸우게 만든다. 그리고 약탈적 조공을 바치게 하고 그 대가로 평화를 선물로 준다. 그것이 팍스 로마나에서부터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까지 이어지는 제국의 역사다.

20, 21세기에 일어난 모든 전쟁에 미국이 관여하였을 뿐 아니라 내전을 일으키고 친미 정부를 세우면서 그 과정에서 엄청난 전쟁 무기가 팔려나가고 그 군산복합체를 뒤에서 조정하는 세력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 미국을 떠나면서 손에 쥐었던 MIT 교수 노암 촘스키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총을 든 나라, 그러나 미국의 폭력성이 미국의 기독교를 잠식하면서 혐오를 선동하는 파시스트 기독교가 탄생하고 있다. 더 경계할 것은 오로지 미국만을 추앙하는 한국의 극우 기독교에 그것이 전략적으로 이식되고 있음이다. 부정선거를 외치고 폭력으로 정권을 타도하겠다는 기괴한 극우 기독교인들의 내한에 USA를 연호하는 광신도 집단이 나타나고 있다.

Build-Up Korea라는 단체와 연결된 극우 기독교 정치인 찰리 커크가 총기 소지를 찬성하는 발언 도중에 피살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관세로 우방을 협박하고 한국 근로자들을 쇠사슬에 묶어 체포 감금하는 모습을 목도하며 우리는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강도인가? 동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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