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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김혜령] 뜨거운 국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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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지난 콘서트하우스에서의 공연이 끝난 뒤, 한 청중을 만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악가로 살면 어떤 기분이에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음악가로서 사는 건, 행복하다고.

한 공연을 위해 오랜 시간 에너지를 쏟아 연구하고 준비한다. 악보 위의 음을 정확히 연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이 음악을 지금 내가 연주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더 길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연주는 아직 완성되지 않는다. 공연 준비의 많은 순간은 동료들과 함께한다. 같은 악보를 두고 같은 시간을 반복하며 서로의 호흡이 조금씩 맞아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에는 분명한 기쁨이 있다. 의견이 다른 순간도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관계가 된다.

연주할 작곡가와 교감하는 시간 역시 중요하다. 악보에 적힌 음표 너머로 그가 어떤 시간을 통과하며 이 음악에 도달했는지를 생각한다. 그 당시의 공기와 삶의 무게, 그가 견뎌야 했던 감정들을 상상하며 이 선율이 만들어진 이유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 감정을 지금의 호흡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고, 그것을 청중에게 전하는 일은 내가 음악가로서 맡고 있는 사명에 가깝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긴장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분명한 감정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청중에게 건네고 싶다는 마음이다. 연주가 시작되면 그동안 쌓아온 생각과 감정은 하나의 흐름으로 모여 무대 위에서 흘러간다. 음악에 몰입하고, 그 시간이 청중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마음은 벅차오른다.

공연이 끝났을 때 남는 감정은 허무만은 아니다. 무대 위에서 충분히 누렸다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건넸다는 확신이 함께 남는다. 감동과 안도, 조용한 행복감. 이 모든 것이 겹쳐진 상태를 나는 여운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여운은 외롭지 않다. 이미 충분히 연결되었다는 감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시간을 재료로 하는 예술이다. 한 번의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고, 그 시간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연주는 기록으로 남을 수 있지만, 그날의 공기와 시선, 청중과 주고받은 미세한 호흡은 돌아오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고, 집 안에는 하루의 소음이 빠져나간 뒤의 고요가 남아 있다. 그제야 나는 무대 위에서 미처 내려놓지 못한 감정들과 다시 마주한다.

라면을 끓인다.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스프를 붓고, 김이 오르는 냄비 앞에 서 있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무대 위의 소리는 조금씩 일상으로 내려온다. 뜨거운 국물을 넘길 때마다 한 번에 쏟아냈던 감정들이 서서히 제 온도를 되찾는다. 화려했던 무대도 이 국물 앞에서는 모두 같은 높이로 내려온다. 공연은 그렇게, 아주 소박한 생활의 장면 속에서 비로소 끝난다. 그리고 이런 순간마다 나는 음악가라서 행복하다는 마음을 느낀다. 쉽지 않은 직업이고 늘 긴장과 함께하지만, 이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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