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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이호준] 김밥 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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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김밥 꽁다리를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땐 '꽁다리'부터 젓가락을 댄다. 거의 본능적이다. 반듯하고 먹음직스러운 중간 부분은 양보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強迫)이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의 영향도 한몫한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 잠을 설치다 일찍 일어나면 들리던 어머니의 김밥 써는 소리. 듣기만 해도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소리. 부엌에 가면 김밥 몸통은 안 돼도 썰다가 어머니가 드시던 꽁다리는 몇 개 얻어먹을 수 있었다. '큰사람 돼야 하니 꽁다리는 먹으면 안 된다'며 도시락엔 꽁다리를 넣지 않으셨지만, 그래서 더 먹기 힘들었던, 더 좋아했던 김밥 꽁다리다.

최근 정치권에서 난데없는 힘자랑이 벌어졌다. 누가 더 높으니, 누가 더 힘이 세니, 누가 권력 서열(序列)이 더 높으니 하는 논쟁이 며칠 이어졌다. 판은 이재명 대통령이 깔았다. 얼마 전 강원도에 가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됐다"고 하더니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대한민국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며 권력 서열을 정했다. 그러더니 며칠 뒤엔 국무회의에서 "자기가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게 노력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같은 힘과 권력 얘기긴 한데 무슨 말인지 앞뒤 연결은 잘 안 된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세고 권력 서열이 제일 높다. 나를 제외하곤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누구인진 다들 안다. '여의도 대통령' '충정로 대통령' 등도 있다고들 하는데 누가 최고인지를 떠나 다 권력의 정점(頂點)에 있는 이들이다. 최고 자리에 있을수록 겸손하고 뒤로 물러설 줄 알면 존재감과 인간성이 더 빛날 텐데 왜 굳이 '나 잘났소' '나 최고요' 하며 과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정쩡한 경우엔 악을 쓰며 드러내야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최고는 가만히 있어도 최곤데 말이다. 김밥 꽁다리는 잘나지도 않고 제일 끄트머리에 있지만 좋다. 그냥 좋다. 힘이 세야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자랑하지 않아서, 양보하고 품을 줄 알아서 더 인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멋지지 않을까.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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