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픽쳐레스크(picturesque)'는 '그림같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연에서 발견되는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과 질서를 찾아내려는 미학적 접근을 담고 있다. 이는 고전적 미의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의 거칠고 우연적인 요소들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려는 시도였다. 영국의 풍경식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구불구불한 길, 무심하게 배치된 나무, 그리고 자연스럽게 펼쳐진 연못은 모두 섬세한 계획 아래 놓여 있다.
'그림같다'는 표현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뜻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감정의 일시적인 반응이라면, '그림같다'는 표현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질서와 조화, 그리고 의도적인 구성에서 비롯되는 이상적 찬탄이다.
'그림다움'에 대한 관심은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과 함께 본격화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즉, 현실을 뛰어넘어 정제된 이상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그 중심에 있었다.
동양화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찾을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실제 자연을 바탕으로 하되, 작가의 주관적 시선과 해석이 녹아 있다. 붓 한 획, 여백 하나에도 철학적 의미와 감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러한 그림 앞에서 감탄하며, 실제 풍경에서도 '그림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속에는 "현실을 넘어선 아름다움", "정돈된 질서", "이상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림같다'는 말은 인간의 이상과 욕망을 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심오한 의미와 질서에 대한 찬사도 숨어 있다. 우리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우연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본능처럼, 예측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정돈된 구조를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깊이 감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도 '그림같은 모습'이기를 바란다. 집을 꾸미고, 옷을 갖춰 입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과정은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이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철학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결국,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철학과 질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내용과 형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우리가 '그림같이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의미가 그 어떤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그렇게 '그림같이' 살아가려는 시도 속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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