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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김윤기] '대선개입'이라는 여당의 재판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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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취재본부 김윤기 기자
서울취재본부 김윤기 기자

"조희대 후보자요? 그분보다 더 훌륭한 대법원장이 없을 겁니다." "청빈한 선비의 삶이 체화된 분입니다. 사법연수원 제자들이 주례 서 줘서 고맙다고 가져오는 선물도 안 받은 분이세요."

2023년 법원을 출입하던 기자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후보자 지명 직후 법조계를 취재하며 들었던 세평이다. '교과서에서 나올 만한 법관'으로 요약될 만한 경험담에는 '임명권자 말도 듣지 않을 분인데 다소 의외다'라는 반응도 섞여 있었기에 제대로 된 대법원장 인사라는 판단이 섰다.

취재원들의 얘기가 허언이 아니었던 듯하다. 바로 직전 대법원장 후보자를 '35년 만의 임명 동의안 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낙마시켰던 국회였지만, 조 후보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며 무난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국회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집권 세력이 된 정부 여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실무근의 의혹을 제기하며 연일 사퇴를 압박하는가 하면, 청문회장에 세우겠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발단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였다. 2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가 나온 이 사건은, 지난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10대 2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다.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판결 전후로 180도 달라졌다. 지난 4월 말 대법원이 대선 전에 이 사건 선고 일정을 발표했을 때 민주당은 이를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내심 상고 기각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겠지만, 달리 말해 상고심 선고를 빠르게 가져가는 것이 잘못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판결이 나오자 민주당은 "대법원장의 선거개입" "사법 쿠데타"라며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신속한 재판은 조 대법원장이 취임 당시부터 반복적으로 강조한 사법부의 핵심 과제였다. 공직선거법은 1심은 6개월, 2·3심은 각 3개월 이내에 판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이 당시 받고 있던 재판은 이미 1심에서만 799일을 소모했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 선택권을 보장하고자 상고심이 속도를 냈다는 해석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유다. 민주당 후보 선출, 혹은 대선 직후 결론이 났다면 그 후폭풍과 정치적 불확실성은 더욱 컸을 테다.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직접 최종 판결을 내리는 대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도 상고심이 정치적이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지난해 12월 위헌·위법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1979년으로 후퇴했다는 탄식이 나왔다. 무너진 공든 탑을 다시 세워야 할 시기지만 국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민주당이 최근 보이는 사법부에 대한 압박과 공격, 헌법상 근거가 없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같은 시도는 군사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은 하룻밤 사이에 일단락됐다. 반면 정부 여당의 사법부 압박은 집요하면서도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도 아닌, 이미 국회 과반을 확보한 집권 여당의 행보가 이러하니 이제는 헷갈릴 지경이다. 윤 전 대통령의 '아닌 밤중의 비상계엄' 선포와 최근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부 공격' 중 어떤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성과를 더 위협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법률에 입각한 신속한 재판이 선거 개입이라면, 최근 정부 여당이 보이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은 재판 개입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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