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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헤가티의 범죄 심리 - 인사이드 아웃]노인 성폭력: 충격이 희미해지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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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헤가티 범죄심리학자

대한민국의 놀라운 변화를 돌이켜 보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과정은 언제나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는 부유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성공 스토리 속에서 종종 간과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쟁 이후에 도로, 철도, 병원, 학교를 세운 일반 국민들이다. 그들은 총 대신 벽돌과 교과서, 진료 차트를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으며, 오늘의 한국 사회를 가능하게 한 기반을 놓았다. 하지만 그들의 말년은 종종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쓸쓸히 보내고 있다.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 잘 알려지지 않는 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때 나라를 세운 이 노인들은 지금 문 닫힌 공간에 살며, 신체가 쇠약해지고, 걷거나 말하지 못하며,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차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의존성은 소수지만 치명적인 경우 학대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방임을 넘어, 최악의 경우 성폭력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2015년, 한국은 6월 15일을 '노인학대예방의 날'로 지정하며, 유엔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과 발맞추었다. 그러나 혹시 이런 날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여전히 사회적 의식 속에 간과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올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천 만명을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2014년 3,532건에서 2023년 7,025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많은 사건은 신고조차 되지 않고, 다세대 가정이나 파견 요양보호사와 같은 상황에서 은밀히 발생한다. 학대는 단발성이 아니라 반복적이며, 피해자는 우울증과 단축된 수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법 시행 이후,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이 늘어나면서 학대 신고도 함께 증가했다. 2017년 요양시설 내 학대 비율은 약 10%였으나, 2021년에는 25.8%로 치솟아 전체 학대 신고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2008년에서 2022년 사이, 시설 내 "신고된" 성폭력 사건 비율은 1%에서 2.5%로 증가했다.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충격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며 심각하다. 가해자들이 주로 악용하는 점은 피해자가 스스로 신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해자는 유급·무급 남성 돌봄 종사자가 대부분이며, 피해자는 대개 70세 이상으로 타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해자는 다른 입소자, 방문 가족, 심지어 배달이나 시설 유지보수 인력일 수도 있다. 연쇄 범행자는 노인에 대한 성적 성향, 가학적 욕망, 혹은 낮은 적발 위험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노인 성폭력 피해자는 젊은 피해자보다 신체적 외상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성기나 항문 부위를 건드렸을 때 고통에 반응한다면 학대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더구나 '안전해야 할 공간'인 요양시설 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피해자에게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남긴다.

일부 비양심적인 요양원 운영자들은 사업적 이해와 소송 우려 때문에 가해 직원들을 조용히 해고해 버린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곳에서 계속 일하며 연쇄적으로 피해를 낳기도 한다.

현행법의 안전장치는 매우 제한적이다. 채용 전 범죄 경력조회는 등록된 요양시설 종사자에게만 적용되며, 가정 방문 요양보호사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또한 노인학대 관련 범죄만 조회할 수 있을 뿐, 아동이나 다른 취약계층 대상 범죄 이력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 전국 단위의 요양보호사 블랙리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반드시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가족들은 직원 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직접 면담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주의와 경계는 요양원이 모두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실제로 일부 가해자는 가족들이 방 안에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적발된 바 있다.

노인 성폭력 신고 건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강력범죄와 마찬가지로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둔감해고 있다. 처음에는 신문 1면을 장식하던 보도가 점차 사회면으로 밀리고, 결국 기사화 되지 않고 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이 한때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악했지만,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범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충격이 사라져 '조용히 정상화'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 나라를 세운 세대에게 침묵은 가장 큰 배신이다. 우리는 결코 충격의 가치가 희미해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앤서니 헤가티 범죄심리학자

앤서니 헤가티 범죄심리학자.DSRM 리스크 & 위기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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