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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떡 인문학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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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떡은 쌀에 술을 넣어 발효시킨 떡이다.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다.
기지떡은 쌀에 술을 넣어 발효시킨 떡이다.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다.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 요리서에는 '증편' 또는 '기증병・이식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의령망개떡.
의령망개떡.
영광모시떡.
영광모시떡.
염매시장 떡전골목.
염매시장 떡전골목.
신감각 떡시대를 열고 있는 만촌동 장장떡집 홍중근·김지평 대표.
신감각 떡시대를 열고 있는 만촌동 장장떡집 홍중근·김지평 대표.

'서리꽃처럼 희고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떡, '상화병'(霜花餠). 고려가요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떡으로, 기주(起酒)·기지떡 등으로도 불린다. 기제사, 고사, 잔치, 행사 등 전방위에 걸쳐 등장하는 떡이다. 가장 과거스러우면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이다. 언떳 카스테라 같은 폭신함, 그러면서도 술떡의 시큼함, 그리고 인절미 같은 쫀득거림.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기지떡 인문학

고려 때 원나라에서 유래한 기지떡은 쌀에 술을 넣어 발효시킨 떡이다.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다.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 요리서에는 '증편' 또는 '기증병・이식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지방에 따라 '증편・기지‧기증떡・술떡・벙거지떡・징편 등 다양하게 불렸다. 달콤한 술맛이 나는 이 떡의 정체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이름은 '양반떡'으로, 양반가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라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이젠 현대적인 형식의 '파티음식'으로도 변모하고 있다.

현재 경북 영주와 전남 광양이 기지떡으로 알아준다. 그중에서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순흥기지떡'이 메카 구실을 한다. 물론 영주시 휴천동 동부교회 옆 '인정떡집'도 알아준다. 순흥은 지금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충북 단양과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울진 등을 관할하는 순흥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단종복위를 꾀했던 금성대군의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영주 부석사 근처 순흥마을에서 대를 이어 기지떡을 만들고 있는 김주한 대표. 그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기지떡은 아주 예쁜 '꽃떡'이었다. 기지떡에는 맨드라미 등 꽃잎과 검은깨 같은 곡물, 차조기 잎(소엽) 등 식물의 잎을 얹거나 석이버섯, 대추 등을 고명으로 올려 기품을 더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모친(장화복)은 순흥면 읍내리 장터 안의 작은 방앗간인 '신안떡방앗간'을 시작했다. 고춧가루도 빻고 백설기부터 여러 가지 떡이 만들어졌다.

어느 때부턴가 기지떡과 인절미가 많이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이 두 가지 떡만 특화한다. 2남2녀 중 둘째인 김 대표가 외지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20대 후반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30대 초반쯤. 그는 쌀 세척기 등 기계를 직접 만들어 떡 만드는 과정을 반자동화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제작과정을 효율화하는 방법을 연구, 기계를 설계하고 떡을 써는 칼과 받침대도 손수 만들었다. 고객들이 기지떡을 미리 맛보고 사갈 수 있도록 한옥으로 '순흥병관'을 지었다. 택배 주문 물량의 60% 정도를 서울, 경기지역에서 받는다. 의외로 젊은 사람이 많이 찾는다. 원래는 어머니 성함을 따서 '장화복떡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손님들이 '순흥기지떡'이라고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름으로 굳어진다.

◆의령망개떡

망개떡은 크게 세 가지 유래가 있다. 가야국에서 백제에 혼례식으로 보낸 품목 중 하나라는 것,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이 떡을 전쟁식으로 먹었다는 것, 떡갈나무 잎으로 싼 일본의 '가시와모찌'와 비슷해 일제강점기 의령으로 유입됐을 것이란 설이다. 이제 의령은 최강의 망개떡 고장이다. 군 초입에 망개떡 조형탑이 서있다. 한우산 정상에도 망개떡마케팅 일환으로 망개떡 먹는 도깨비 등 망개떡 설화원을 만들었다. 의령문화원은 지난해 '의령의 언어와 문화 1' 시리즈 일환으로 '의령소바와 의령망개떡'이란 책까지 펴냈다. 망개떡이 의령군 특산품이 될 수 있었던 건 군내에 유달리 '청미래덩굴'이 많아서다. 특히 자굴산에는 군락지가 사방에 널려있다. 의령읍 하리 수암마을은 일명 '청미래마을'로 불리는데 농촌체험객을 상대로 망개떡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1년 의령망개떡을 '지리적표시제 등록 제74호'로 지정한다. 비로소 의령이 '망개떡 1번지'로 급부상한다.

망개떡은 멥쌀을 갈아서 쪄 낸 후 팥소를 넣어 빚은 떡을 연밥처럼 청미래덩굴 잎으로 감싼 것이다. 사람들은 떡보다 '망개'를 더 궁금해한다. 경상도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로 부른다. 자연, 그 잎은 '망갯잎', 잎으로 싼 떡은 '망개떡'이 된다. 청미래덩굴은 황해도에서는 '매발톱가지', 강원도에서는 '참열매덩굴', 전라도에서는 '종가시덩굴' 등으로 불린다. 여러 고장에 여러 떡이 있지만 잎사귀를 붙여 내는 떡은 흔치 않다. 전남 영광의 명물인 '모시떡'은 모싯잎을 갈아 쌀가루에 섞어 사용한다.

◆떡방앗간에서 태어난 망개떡
현재 의령군에는 임영배의 '의령망개떡', 전연수의 '칠곡 토속식품' 등 10여 개 브랜드가 있다. 이로 인해 <사>의령망개떡협의회까지 탄생하게 된다. 원조 격인 '의령망개떡'은 전통 스타일을 고집하고, 92년 후발주자인 '칠곡 토속식품'은 컬러떡과 다양한 팥소를 개발하는 등 퓨전 스타일을 정착시켰다.

의령 전통시장 내에 있는 '의령망개떡'은 토박이에겐 '남산떡방앗간집'으로 통한다. 주인 임씨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선 그런대로 형편 좋게 살았다.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경제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임씨는 부모가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떡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묵공장을 차렸는데 하필이면 공장 부지가 떡방앗간이었다. 운명이다 싶어 어묵과 떡을 병행했다.

하지만 10년간 어묵공장의 기름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설상가상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결국 망개떡에 올인한다. 가장 큰 난관은 망갯잎 확보였다. 겨울에는 잎을 확보 못한다. 잎은 매년 6월20일부터 따기 시작해서 8월 초순까지 딴다. 너무 부드러워도 너무 작아도 안 된다. 8월이 넘어가면 잎에 벌레가 생겨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잎을 따 와도 갈무리하는 법을 몰랐다. 198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망갯잎 염장보관법'을 완성해낸다. 사계절 잎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염장한 잎은 사용 전 한 번 더 삶아낸다. 그래야 소금기가 제거된다.

◆영광모시떡
'호불여 영광'(戶不如靈光), 굴비 때문에 돈이 많이 돌아 예전부터 영광은 '쌀독인심'이 두둑했다. 최근에는 고창·강진·함평·장성·서산 등지에서도 영광을 벤치마킹한 모시떡이 경쟁대열에 섰다. 과거 모시길쌈을 위해 모시 재배가 성행했던 영광에서 상부상조의 따뜻한 정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 먹던 모시떡. 그 맛과 영양소가 일품이라 산업화 바람으로 모시베 생산이 중단된 때도 전통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모시는 다년생식물로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자생하며 섬유용은 '세모시', 식용은 '참모시'로 불렸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그 '소'에 있다. 일반 송편은 깨와 설탕을 함께 넣어 고소함과 달달한 맛을 내지만 모시떡은 동부를 통째로 넣어 한 입 베어 물면 콩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져간다. 요즘은 흑미, 밤 등 기능성 소를 넣은 퓨전 모시떡도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염매시장 떡전골목

서울의 낙원상가 다음으로 활성화 된 떡골목은 염매시장 떡전골목이다. 현대백화점대구점 자리가 바로 떡전골목이었다. 백화점 때문에 현재 종로골목으로 이전을 해왔다.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 된 떡집은 '종로예당'이다. 그 다음으로는 제일, 서울, 염매, 현대, 대원, 한미 등 7개 업소만 남았다. 한창 때는 20여 개 이상이 밀집해 있었다. 80년대초 이 거리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떡이 있다. 바로 손님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든 모형떡이다. 이게 전국으로 파급된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낱개 포장한 행사떡의 시대가 열린다. 그 견인차가 바로 떡보의 하루와 아리랑떡집이었다. 참고로 부산 광안리에서 시작된 떡카페인 '떡시루'가 바로 인절미팥빙수 신드롬을 일으킨 '설빙'이다.

종로떡집에서 시작된 종로예당이 있는 자리는 예전 싸전골목이었다. 시어머니(백남조)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서태옥 사장은 남편과 함께 가게를 지키는 음식명장이다. 영양떡, 약식, 주악, 꽃증편, 치전떡, 부꾸미, 구름떡, 약식, 치전떡, 잡과편 등 혼수음식은 물론 행사음식에 걸쳐 20여 가지를 취급하고 있다. 요즘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충남 공주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영양떡이다. 땅콩, 아몬드, 호두, 팥, 밤, 콩, 호박, 대추 등 기능성 재료가 잔뜩 들어가 있다.

◆청년 떡장수

취재 중에 신개념 떡문화를 퍼트리고 있는 청년 떡장수 두 명을 만나게 됐다. 홍중근(사진 왼쪽)과 김진평. 둘은 선후배 사이. 홍 씨는 세계물도시포럼 등에 간여한 국제행사기획 전문가, 김 씨는 경일대 소방방재과를 나와 프랑스 르꼴르동블루를 통해 요리를 배우며 시내에서 차카페도 운영한 로컬 크리에이터. 선배의 간청으로 의기투합했다. 빵은 난리인데 떡이 죽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올해 효목시장 내에 '장장떡집'을 오픈했다. 하루 12시간 초죽음 되도록 일했다. 시행착오 끝에 우유꿀설기, 옥수수설기, 소금우유설기, 시나몬인절미, 수정과설기, 녹차앙설기 등 신감각 떡을 론칭한다. 마케팅 전략이 독특하다. 안주 같은 떡과 브런치떡의 가능성까지 타진했다. 위스키와 어울리는 시나몬인절미, 와인 안주로 들어가는 설기, 치즈플레이트와 비슷한 설기플레이트, 압권은 청도미나리와 막걸리와 궁합이 맞는 '미나리인절미'.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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