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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초대석-전병서] 한국, AI산업에서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을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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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한국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으며,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그 속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산업과 생활을 재편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학습에서 추론으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AI는 방대한 데이터 처리를 요구하고, 이는 메모리 반도체의 병목현상을 초래한다.

특히 HBM은 AI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국으로서, 세계 AI 산업의 심장부에 서 있다. 엔비디아, 오픈AI 같은 글로벌 기업도 한국의 HBM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시장 기회가 아니라, 글로벌 AI 전쟁에서 한국이 쥔 비장의 카드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전쟁은 고래 싸움에 비유되곤 한다. 미국은 GPU와 AI 모델, 중국은 희토류와 저렴한 제조 역량으로 맞서고 있다. 이 전쟁에서 한국은 자칫 등 터지는 새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래 싸움 속에서도 작은 쥐는 생존할 수 있다. 형국론의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은 이를 상징한다. 쥐, 고양이, 개, 호랑이, 코끼리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상황에서 작은 쥐도 당당히 살아남는다.

HBM은 AI 시대의 '희토류'다. AI 산업에서 한국의 HBM은 희토류와 같은 대체불가의 자원이다. 희토류가 중국의 전략물자라면 HBM은 한국의 전략물자다. 미국의 터무니없는 투자 조건과 중국의 통상 압박 속에서도 한국은 흔들리지 않을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은 HBM을 단순한 제품이 아닌 국가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이를 활용해 AI 칩 확보와 독자적인 AI 모델 개발에 나서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다.

Number One(최고)이 아닌 Only One(유일한 것)이어야 살아남는다.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는 GPU, HBM,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전력이다. 이 중 HBM은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경쟁력을 가진 분야다. 미국은 GPU와 AI 모델에서, 중국은 희토류와 제조 기반에서 앞서지만 한국은 HBM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는 미·중 간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의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HBM 산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 반도체지원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선진국과 경쟁국들은 이미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키우고 있다. 파격적인 지원과 과감한 투자로 HBM 산업을 후발 주자의 추격이 불가능한 경지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이다.

지금은 새로운 고기를 낚으러 나설 때가 아니다. 이미 잡은 고기, 즉 반도체와 HBM 산업을 제대로 키워야 할 때다.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HBM 기술 개발에 대한 세제 혜택, 연구개발 지원,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전력 인프라 확충에도 힘써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협상에서 HBM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AI 칩과 모델 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은 AI 전쟁의 한복판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HBM은 한국이 쥔 최종 병기다. 이를 국가 전략물자로 지정하고, 반도체 산업을 대체불가의 경지로 끌어올린다면 한국은 새우가 아닌 쥐로, 나아가 오수부동격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지금이야 말로 과감한 결단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미래는 AI와 HBM에 달려 있다. '오수부동격'을 노려라. 대체불가의 위치를 확보할 때, 한국은 AI 시대의 당당한 승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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