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은 단순한 패권을 넘어 기술, 경제, 안보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단일 중심을 갖지 못하는 다극화 체제로 접어들었다. 각국은 자국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강화하며,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다.
동북아 질서 역시 흔들리고 있다. 한미일 협력체제가 강화되는 듯하지만, 각국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언제든 불안정해질 수 있다. 중국은 자국 중심 경제권 재편을 시도하고, 일본은 방위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안보 불확실성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으며, 수출과 기술 경쟁력 유지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는 국가 생존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자원과 기술, 전략산업의 자립성이 곧 안보이며,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다. 특히 국방 산업, 'K-방산'은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기술력 확보와 산업 생태계 유지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최근 한국 방산 수출은 유럽과 중동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루며 'K-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폴란드, 루마니아, 노르웨이 등은 한국산 무기체계를 도입하며, 기술과 납기 경쟁력에서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흐름이 영원할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다.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국 방산 체계 구축에 속속 나설 방침이다. 나토 국가들은 '유럽 자율 방위 체계'를 강조하며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등 기술 자립에 팔을 걷고 나섰다. 이는 K-방산 수출 시장 축소로 이어지며, 방산 시장에서도 각자도생의 압박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초격차 전략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단순 수출 경쟁이 아닌 국방 기술 R&D 선제 투자를 통해 질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과 차세대 전투 체계 개발 예산 삭감은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방 연구개발은 단순 군사비가 아니라 민간 기술 발전과 산업 생태계의 버팀목으로,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대가 필요한 분야다.
국내적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수도권 일극 체제에 묶여 있다. 지방의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는 국가 전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지 오래다. 세계의 다극 체제 변화 속에서, 국내가 단극 구조에 머무른다면 이는 국가 총체적 리스크와 직결될 수 있다. 산업과 연구개발, 교육, 인프라가 지방에도 균등하게 자리 잡을 때, 한국은 다극화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극 또는 무극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각자도생 처지에 놓여 있다. 뒤처지는 국가는 단순한 기술 수입국 혹은 '누군가의 하청국가'로 머물 수밖에 없다. 한국이 생존과 도약을 동시에 이루려면, 방산을 포함한 전략 산업의 자립과 기술 투자를 적극 확대하고, 내부적으로는 수도권 편중을 해소해 국가 전체의 다극 경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는 위기이자 기회다. 정쟁만 벌이며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국정 안정을 위한 여당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야성만 갖춘 정치권에서 서로를 뜯어내기에만 골몰한다면 몇점 남지 않은 살점(국가 경쟁력)마저 사라질 일은 불보듯 뻔하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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