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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춘근] 미중 패권 전쟁터가 되어버린 APEC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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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국제정치학자

APEC은 문자 그대로 아시아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경제 협력'을 위해 연례적으로 모이는 대규모 국제회의로서 1989년 시작되었다. 현재 홍콩, 대만 포함 22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대규모 국제기구로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의 주요 정치, 경제, 군사 강대국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국제제도(International Institution) 중 하나다.

국제정치를 국가 간 힘의 투쟁으로 보는 현실주의 학파의 국제정치 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제도가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리라는 환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며 경고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 죤 미어샤이머 교수는 1994년 발표한 논문에서 국제제도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잘못된 약속(False Promise)들을 믿지 말라고 충고했었다. 당시는 냉전이 끝난 직후로서 세계 많은 나라들이 국제기구, 국제제도에 의한 항구적 평화가 가능하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2025 대한민국의 고도 경주에서 열린 2025년 APEC 회의야말로 미어샤이머 교수가 우려 했던 바대로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그리고 긍정적인 기여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당측 정당 인사들이 성공적인 회의였다며 2025년 APEC 회의의 성과를 칭송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을 대로변에 내다 걸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과연 어떤 측면에서 2025년의 APEC 회의가 성공적인 회의였는지를 설득력 있게 요약해 주는 언론도 학자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번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 회의는 국가들의 진솔한 협력이 이루어진 화기 애애한 외교무대였기 보다는 미중 패권 갈등이 노골적으로 충돌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APEC 2025 기간에 열렸던 수많은 다자 회담 중에서도 세계의 가장 큰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경주가 아닌 부산의 김해공항에서 열렸고 회담을 마친 후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귀국해 버렸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고 APEC 회원국도 아닌 북한의 김정은이 혹시 출현하지 않을까 하는 허무한 기대조차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기 이전 말레이시아와 일본을 방문, 가히 '대중국 포위 외교'라고 말해도 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중국 주저앉히기 작전을 전개했다. 그동안 중국 측에 경도되어 있던 동남아 국가들인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을 일거에 미국의 친구 나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지난 수년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중국이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의 영토분쟁을 해결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는 두 나라 정상을 불러 놓고 평화조약의 조인을 중재했다. 캄보디아 총리는 그 자리에서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트럼프는 또한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과 희토류 개발협정을 체결, 중국이 휘두르는 희토류라는 보검의 칼날을 무디게 했다. 가장 중요한 트럼프의 동남아 순방 결과는 그동안 오히려 중국 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를 미국 편으로 엮어 놓았다는 점이다.

트럼프와 일본의 신임수상 다카이치 사나에의 찰떡궁합은 미중 패권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중국이 얻어맞은 가장 큰 한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대만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이라고 말하며 미국과 함께 중국의 대만침략을 억제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2021년 아소 다로 총리가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일본은 미국과 함께 참전하겠다고 언급 함으로써 사실상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 시킨 데 이어 다카이치 사나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미일 동맹을 최고의 동맹이라는 찬사까지 받아 내었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는 미국 대통령의 헬기를 타고 미국 항공모함에 착함(着艦)함으로써 두 나라의 군사동맹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과시했다.

트럼프는 한국과의 회담에서도 얻을 것을 다 얻어 내었다. 회담 후 트럼프는 자신의 투르스 소셜에 한국은 관세를 낮추기 위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지불(pay)할 것이며 이에 더해 6,0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명기했다. 중국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도 승인했다.

중국의 주석 시진핑은 왠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였고 트럼프와의 대결에서도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2025 APEC 회의가 열리기 약 2주 전 중국 국방부는 9명의 상장(대장급)이 부패로 인해 당적과 군적을 박탈당했다고 발표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중국에서 총구를 빼앗긴 처지가 된 시진핑이 국제무대에서 능숙한 외교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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