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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뜨기까지 6년, 병원은 늘 긴장의 연속…발달장애 가족이 살아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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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가족들: 발달장애 돌봄의 굴레] 수영장 적응 어려워…물에 익숙해지기 위해 목욕탕 전전하며 "30분만이라도 아이와 들어가게 해달라"
학교에 보내고 '오늘 하루도 무사하기만'이라는 바람, 외부 활동에선 아이의 돌발행동에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몸이 커져가는 자폐성 아들, 의사 진료보는 것도 쉽지 않아…병원 가기 2~3일 전부터 긴장

5일 대구특수교육원 실내수영장에서 발달장애아 시혁 군이 수영 연습을 마친 뒤 어머니의 응원을 받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일 대구특수교육원 실내수영장에서 발달장애아 시혁 군이 수영 연습을 마친 뒤 어머니의 응원을 받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자녀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순조롭게 받아들인 부모는 없다. '오늘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다짐하며 치료실을 전전하지만,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매번 좌절한다. 부모들은 칫솔질 같은 일상 과업을 가르치는 데에만 수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언제 발현될지 모르는 자녀의 돌발행동으로 하루에 수십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깥 세상보다 집 안을 택하면서 독박 돌봄과 고립이 뒤섞인 채 살아간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에 따르면 주돌봄자 개인 시간은 주중 하루 평균 3.5시간에 그쳤고 주말에는 2.9시간으로 줄어든다. 평생 돌봄이란 굴레 속에서 한발 짝도 벗어나기 힘든 것이 발달장애가정의 현실이다.

◆ 수영장 물에 익숙해지는 데 6년

5일 대구특수교육원 실내수영장에서 발달장애아 시혁 군이 수영 연습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일 대구특수교육원 실내수영장에서 발달장애아 시혁 군이 수영 연습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자유형 50m에 1분 38초, 100m에 3분 32초. 자폐성 장애 수영선수 김시혁(16) 군의 레이스 기록이다. 어머니 권은정(47) 씨는 아들의 발달지연 개선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일찌감치 수영을 배우게 했다.

"시혁이는 자폐예요. 운동하면 혈액 순환으로 뇌혈관에 좋은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또 피부에 물이 닿으면 인지 능력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수영을 택했죠."

처음엔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시혁 군은 6살 무렵부터 수중재활을 시도했지만 울음을 멈추지 않자 수업에서 거부당했다. 그때부터 은정 씨는 '물에만 익숙해지면 좋겠다'는 한 가지 바람으로 동네 목욕탕을 전전했다. 손님이 끊긴 마감 시간대에 "단 30분만이라도 아이와 들어가게 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한 달간 목욕탕에서 물과 익숙해진 이후 다시 수영장을 찾았으나 시혁 군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수영장 특성상 작은 소리가 크게 울렸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그렇게 7개월 동안 시혁 군은 은정 씨 목을 안고 물에 떠 있기만 했다.

수영복 등 물에 들어가기 위한 도구 하나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아들을 위해 은정 씨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수영안경 색깔이 검정, 분홍, 파랑 등 다양한데 혹시 세상이 다르게 보여서 힘들어하는 건가 싶어 투명한 것으로 바꿨어요. 수모는 천이나 실리콘을 거부해서 반 코팅 우레탄 제품을 찾아줬고 수영복도 길이를 바꿔가며 맞췄습니다. 수영에 익숙해지는 데 6년이 걸렸어요."

5일 대구특수교육원 실내수영장에서 발달장애아 시혁 군이 수영 연습을 마친 뒤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일 대구특수교육원 실내수영장에서 발달장애아 시혁 군이 수영 연습을 마친 뒤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시혁 군이 특수학교에 다닌 지도 어느덧 7년. 은정 씨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매일 교실에 들어간 모습을 눈으로 보고 오지만, 뒤돌아서면 '오늘 하루도 무사하기만'이라는 바람이 절로 생긴다.

은정 씨는 아들과 집 밖을 나서면 허리를 굽힐 일이 많다. 하루는 시혁 군이 엘리베이터에서 크게 뛰면서 작동이 멈춘 날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난 은정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시혁이는 크게 흥분하면 소리를 질러요. 어릴 때는 사람들이 '아이니까'라며 이해해 주었는데 이제는 덩치가 커져서 돌발행동을 보일 때마다 빨리 숨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마트를 가거나 줄을 서서 기다릴 때면 눈치가 많이 보여서 여전히 힘듭니다."

캠핑을 즐기는 가족이지만 온전히 그 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다. 잠시 고개를 돌리면 시혁 군이 다른 텐트로 가서 고기를 집어 먹는 경우가 잦아서다. 동대구역 등 기차를 탈 때도 과자를 먹고 부스러기를 흘리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은정 씨는 아들이 지나간 장소에선 환경미화원처럼 청소하고 있다.

영화관은 집 밖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면에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어서다. 그럼에도 아들의 돌발행동을 대비해, 언제든 빠르게 나갈 수 있도록 출입문 앞에 좌석을 잡는다.

발달장애 자녀 부모들은 아이가 자라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두렵다고 말한다. 나이에 맞는 새로운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은정 씨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인중에 수염이 나자 그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폐성 장애는 자기주도적이지 않아요. 면도하는 법을 알려줘도 왜 하는지 모릅니다. 시혁이에게 가르쳐야 할 게 많은데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제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 치과 치료도 성인 4명이 붙어야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아 민재가 어머니의 돌봄을 받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아 민재가 어머니의 돌봄을 받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김종길(48) 씨는 아들 민재(15) 군이 세 살 무렵, 어린이집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며 자폐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대구 북구 칠곡에 살던 종길 씨는 동네에 있는 모든 치료실 센터를 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 '자폐로 보인다'는 소견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자폐를 염두에 둔 부모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자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어요. 발달이 늦더라도 치료를 받으면 일반 아이들처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매달 50만원가량 치료비를 냈었죠."

아들이 자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종길 씨 부부는 4년이 지난 뒤에서야 장애인으로 등록하게 됐다. 매달 수십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

학교 입학 전에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상동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벽지를 뜯어 입에 넣었다가 뱉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특정 행동이 잠잠해지면 곧바로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어느 날부터는 엄마 화장대 위를 화장실처럼 여기며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아 민재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양치질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아 민재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양치질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돌발행동을 하는 탓에 병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염이 심한 민재 군은 이비인후과를 자주 가야 했지만, 중학생이 된 뒤로는 몸집이 커지면서 집에서 버티는 날이 더 많아졌다.

"민재가 어릴 때는 제 무릎에 앉혀서 힘으로 제어하며 진료를 봤어요. 지금은 155㎝에 60㎏만큼 자라서 통제가 안 돼요. 진료를 보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 다리를 세게 걷어차기도 합니다. 콧물이 보여도 참다가 중이염이 되면 그제야 병원으로 갑니다."

치과 진료를 위해서는 성인 남자 4명이 민재 군을 침대에 눕혀 묶어야만 했다. 주사 바늘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마취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며칠 전에는 뇌전증으로 대학병원을 갔는데 MRI나 피를 뽑아야 했어요. 이렇게 병원을 가야 할 때면 '검사라도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2~3일 전부터 엄청 긴장돼요."

어머니 이주희(40) 씨는 오후 2시쯤 하교하는 민재의 돌봄을 전담하다시피 한다. 한때는 바깥 세상을 보여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자 했다. 그러나 민재 군이 홀로 돌아다니는 아찔한 모습을 본 뒤로는 집 밖을 나서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

"대로변에 있는 편의점에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갔어요. 차들이 쌩쌩 오가는 도로 중간에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혼자 숨어버리기도 하는데 잊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외부활동은 최소화합니다."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아 민재가 부모님과 함께
5일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달장애아 민재가 부모님과 함께 '세상과 소통중인 발달장애아 입니다. 배려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외출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이 때문에 종길 씨 부부는 불가피하게 외출할 경우 민재 군에게 조끼를 입히고 있다. 조끼에는 발달장애인이라는 설명과 부모 연락처가 쓰여 있다.

종길 씨 부부는 첫째 민재 군에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둘째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함이 크다. 가족끼리 외출하더라도 둘째가 원하는 곳보다 모든 일정이 민재 군에게 맞춘다.

"둘째가 캠핑장처럼 체험 활동하는 곳에 가보고 싶어해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민재를 데려가는 게 어려워요. 똑같이 소중한 아들들인데 아픈 첫째를 많이 돌봐야 하다 보니 둘째 욕구를 못 들어줘서 항상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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