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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창환] 레전드로 기록될 경주 A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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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사회2부장
이창환 사회2부장

경주 APEC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연안 21개 회원국 정상이 31일 라운드 테이블에서 갖는 정상회의와 이어지는 만찬은 APEC의 하이라이트다. 이 자리에서 경제를 기반으로 아시아·태평양의 번영과 협력, 미래를 논의한다. 경주를 가장 잘 드러낼 이벤트도 모습을 드러낸다.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또 다른 레전드(전설)'로 기록된다. 신라 멸망 이후 경주에서 열리는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라는 점에서 '경주의 레전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경주는 역사와 전설이 혼재한 곳이다.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 992년 동안 신라와 통일신라의 수도였고, 단 한 번도 옮긴 적이 없다. 천년의 역사를 곳곳에서 고스란히 간직하는 동시에 박혁거세, 김알지 전설도 살아 있다. 이런 역사와 전설에 APEC이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신라 경주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국제적인 도시였다. 왕릉 주변을 지키는 무사상이 아랍인의 모습이고,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 유리그릇인 로만글라스 등 수입품이 발견된 게 증거다.

신라가 망한 이후 한반도 주류 권력은 개성, 한강 등 중부 지역으로 넘어갔다.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경주는 잊힌 도시였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에서 불교문화가 강했던 경주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랬던 경주가 오히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발굴이 시작됐고, 박정희 시대 동안 보문관광단지도 개발됐다.

기성세대에게 경주는 추억의 도시다. 중·고교 시절 경주는 수학여행의 첫 후보지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북 화해 무드 속에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봄, 가을에 경주는 수학여행을 온 중·고생들로 가득했다.

APEC은 기성세대에게 경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MZ세대와 외국인들에게 K-컬처의 뿌리를 알려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의 근원이 경주인 셈이다.

경주 문명의 독창성은 금관이 독보적이다. 1921년 경주 노서동의 한 집터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금관총 이후 104년이 지난 지금, 경주 곳곳에서 발굴된 금관 6점이 국립경주박물관에 모여 있다. 동아시아 국가의 공통적인 문화유산은 불상과 도자기다. 정형성을 가진 금관이 제작된 곳은 신라가 유일하다. 내물왕에서 지증왕까지 약 150년 동안 제작된 금관은 나무·사슴 뿔·새 모양에다 곱은옥과 드리개 등 일정한 정형을 유지하고 있다.

경주는 왕릉과 고락을 함께한다. 도심에 거대한 왕릉이 있고, 왕릉 옆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고 숨을 쉰다. 신라의 흔적이 먼 곳이 아닌 바로 옆에서 살아 생동한다. 이런 풍경은 외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생경하다.

사흘 전에 시작한 경주 APEC이 순항하고 있다. 관계 당국의 빈틈없는 준비에다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협조가 더해져 사건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어제(29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를 찾아 도시 전체에 물샐틈없는 통제가 이뤄지는 기분 좋은 홍역을 치렀다. 한미 정상 간 관세 후속 협상을 전격 타결하는 성과를 냈다. 오늘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문관광단지를 찾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빠진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 줄지도 관심이다.

경주는 APEC 기간 매일매일 새로운 스토리가 쓰이고 있다. 이 스토리를 경주의 역사에 덧입혀서 세계 속의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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