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에는 '활인서(活人署)'가 있었다. 역병이 돌면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병들고 가난한 백성을 돌보던 곳이었다. 그들의 손끝에는 수익이 아닌 생명이 있었다. 그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정신은 '공공의료'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에서는 대구의료원이 바로 그 등불을 들고 있는 곳이다.
최근 대구의료원은 '적자 논란'과 '전공의 미달' 등 쉽지 않은 문제에 직면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공의료의 본질을 되살리는 변화도 시작됐다. 올해 전공의 충원율은 여전히 미달이긴 하지만 지난해보다 반등했고, 지난 10월에는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비어 있던 '장애인 건강검진센터'를 개소했다. 화장실·탈의실·접수대 등에 도움벨과 경사로를 설치하며 장애인도 차별 없이 건강검진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것은 지역 공공의료의 큰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공공성에 기반한 취약계층의 의료 접근성 보장과 민간 기피 분야 필수의료 제공을 위해 ▷감염 ▷응급 ▷어린이 등 3대 취약 분야에 대한 역량을 집중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광역 단위 최고 수준의 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27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통합외래진료센터 증축을 진행 중이며, 경북대학교병원과의 협력을 통해 우수 의료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진료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역 건강 안전망 강화를 위해서는 '지역 내 노인요양시설 연계 네트워크 구축사업'과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군위군과 원격의료 협진을 통해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방의료원의 적자는 방만 경영의 결과가 아니다. 응급·감염병·노인성 질환·장애인 진료 등 수익성이 낮은 영역을 담당하며 민간이 기피하는 필수의료를 떠맡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코로나19 당시 대구의료원은 감염병 거점병원으로 지정되며, 지역 의료 최전선에서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의료진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들을 돌봤고, 그때의 경험은 지금도 대구의료원에 고스란히 남아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지켜온 신뢰는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안전망이었다. 이제 대구의료원은 장애인·노약자·저소득층 등 의료 취약계층을 포용하는 복합의료체계를 구축하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공공병원의 성과는 개인병원과는 달리 흑자나 적자라는 숫자로 판단되지 않는다. 공공병원의 적자는 때로 한 도시의 생명을 지탱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구의료원에 대한 재정 지원은 부담이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회적 보험료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수익이 아니라 신뢰이며, 공공의료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의료는 산업일 수 있지만, 공공의료는 언제나 사회의 양심이다. 활인서의 등불이 제중원의 불빛으로 이어졌듯, 그 불빛은 오늘도 대구의료원 울타리에서 꺼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수익이 아닌 생명을 택한다. 그것이 공공의료의 역사이자, 대구의료원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같은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대구의료원은 올해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 필수의료 강화 지원 사업'과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하며 '공공병원도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윤보다 형평을 선택한 결과, 그 비효율 속에는 인간의 품격이 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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