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는가 보다. 대구시 신청사 시민 공론 결정을 뒤엎으려는 유령이 또다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모습을 드러내는 '정략'이라는 유령이다.
대구시는 신청사 건립 문제를 십수년간 해결하지 못했다. 정치적 이해와 지역 갈등의 파고를 넘어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 대구 지역사회는 시민 공론을 통해 이 해묵은 문제를 마침내 매듭지었다. 이는 '시민의 힘'이 공공 현안을 둘러싼 합의 형성적 정책 결정을 이뤄낸 보기 드문 성과였으며, 장기간의 숙의 과정에서 학습·토론·평가를 거친 시민 대표의 결론을 지역사회가 수용한 빛나는 순간이었다. 숙의민주주의와 풀뿌리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준 사례로, 지역 정치인·전문가·행정공무원,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이 함께 만든 공동의 작품이었다.
이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첫째, 대구시의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시의회가 만장일치로 공론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지 않았다면, 공론 과정은 정치적 풍파 앞에서 흔들렸을 것이다.
둘째, 전문가 그룹의 안내가 시민 판단을 견고하게 했다. 객관적 데이터와 평가 지표 제공을 통해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숙의할 수 있게 했다.
셋째, 행정의 지원과 비간섭이 있었다. 시장과 공무원들은 공론화가 내실 있게 진행되도록 지원하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이는 특정 진영의 이해에 매이지 않고, 숙의를 통해 자신의 판단을 바꿀 수 있는 '전환의 힘'을 의미한다. 그런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지역사회가 수용가능한 통합적 결정이 가능하다. 이 모든 요소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며 민주적 집단지성이 구현된 것이다.
이 공론화 과정은 학계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높은 관심과 평가를 받았다. 2021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가치 탐구와 실천' 프로그램 연구보고서인 〈공론위원회의 비판적 검토와 발전 방향〉은 최근 다양한 공론화 사례 가운데 대구시 신청사 공론화가 공정성·민주성·숙의성 측면에서 모범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우수상을 타며 학내에서도 주목받았다. 또한 2022년 한국협상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는 〈대구광역시 신청사 건립 공론화 사례 보고〉가 발표되어 시민참여 숙의민주주의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소개되었다.
전국 여러 지방자치단체 공론화 담당자와 연구자들이, 풀기 어려운 지역사회 갈등을 시민 공론을 통해 '수용성 높은 통합 형성적 정책을 도출하여' 해결한 대구의 사례에 관심을 보이며 벤치마킹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대구 정치판은 이 자랑스러운 성과를 스스로 걷어차려 하는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공론 결과를 흔드는 일이 아니다. '시민의 명령'을 뒤엎는 것이며, 만장일치로 조례를 제정해 공론화를 가능하게 했던 대구 시민의 최고 주권 기구인 대구시의회의 존엄을 부정하는 행위다. 홍준표 대구시장 시절부터 최근까지 시민의 명령과 시의회 결정을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일에는 무엇보다 대구시의회가 나서서 스스로 내린 결정과 권위를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신청사 건립 과정은 이번 논란 이전에도 숱한 시비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지막 방파제 역할을 한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 시민은 시의회가 만든 조례를 근거로, 숙의를 통해 내려진 결정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지켜 왔다.
대구지역 정치권에 정중히 권고한다. 대구시 신청사는 단순한 건물 하나 짓는 토목건축사업이 아니다. 이는 대구 시민이 바라는 가치를 짓는 일이며, 시민의 희망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이백오십만 시민이 거의 1년간 숙의해 내린 결정인 만큼, 지역 정치인들은 그 '숙의(熟議)'의 의미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시민이 숙의해 내린 명령을 정치가 '숙고(熟考)'로 응답할 때 비로소 지역 정치의 품격이 지켜진다. 이제 필요한 일은 정략으로 공론 결정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이루어낸 이 성공을 대구의 미래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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